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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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친구가)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밥도 30분 안에 해치우고, 하루 종일 매장에 서서 쉬지도 못하고 일했거든요. 거의 중노동을 하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산 삶의 끝이 이러니까 회의감도 들고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또 희생양 되는 거 아냐' 괴로운 생각이 밀려와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너무 힘겨웠어요. (-15-)

강난성모병원이 꽤 유명한 병원이 있었어요. 1995년 당시는 음주운전도 잘 단속되지 않고, 음주문화가 한창 발달해서 교통사고 환자가 많았어요. 지금은 외상환자가 많이감소했지만 그때는 사망률 1위가 거의 교통사고였죠. 심근경색, 뇌졸중도 많았어요. 이런 응급환자가 많았던 시절인 데다가 서울 강남지역에는 병원도 별로 없어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이 늘 미어터졌죠.사고가 나기 전에도 항상 붐비는 응급실이었어요. (-78-)

사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던 1995년은 아직 우리나라에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던 시절입니다. 응급의료의 개념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강남성모병원을 필두로 아산병원, 삼성병원 등 극히 일부 병원에만 응급의료센터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112-)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에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살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 십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테다.(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게 아니고 진행중이라는 'ing' 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 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제 자식들도 '아 고모가 이것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구나'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제가 자세히 설명하면 저의 힘들었던 짐을 아이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 같아 싫더라고요. 제 안에 맺힌 매듭은 10년이 지나도 풀어지지 않고 저를 힘들게 할 겁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들도 지금 괴롭고 힘든 부분을 잘 견뎌내지 못하면 내년, 10년, 20년 후 , 더 힘들어질 거예요. 짐의 무게 때문에 압사당할 것 같은 느낌도 올 거고, 그러나 잘 견뎌야.'그러나' 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요.'그러나' 다음에 올 단어는 10년 후 제가 만들어야겠죠.'그러나 어떻게 됐더라'하고.'그러나'라는 단어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p199)

그런데 다리가 끊어지고(1994년, 성수대교 참사),백화점이 무너지고 (1995년,삼풍백화덤 참사),꼬마 아이들이 해변에서 휩쓸려 가고(1999년, 씨월드 참사), 화마가 지하철을 덮치고 (2003년 , 대구 지하철 참사),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있다가 거대한 무게에 눌리고(2014년, 경주리조트 참사),급기야 해맑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수학여향을 떠난 아이들이 저 남도의 차디찬 바닷 속으로 사라져가는 파국(2014년, 세월호 참사)의 연속 앞에서, 우리는 차라리 허망하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259-)

벌써 20년이 지났다. 1995년 6월 29일 일어났던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는 예견된 사고였다. 후진국형 인재, 안전불감증이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2014년 똑같은 참사가 다시 재현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가 바로 그 참사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최근이 아닌 , 1995년 당시에 발효되었다면, 대한민국 내 여러가지 재해,재난은 생겨나지 않앗을 것이며, 생겨난다 하더라도,재해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더 커졌을 것이다. 1995년 부자 동네였던 서초의 한복판, 대한민국 명품을 살 수 있었던 유일한 백화점, 삼풍백화점은 인간의 욕망이 모여있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를 가장하여,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서, 명품을 가져왔던 사람들, 삼풍백화점 인근 초등학생이 다수 삼풍백화점에 매몰되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 당시 11일만에 구조되었던 최명석, 13일만에 구조되었던 유지환,그리고 17일 만에 구조되었던 박승현이 있었다. 그리고 실종자 6명은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삼풍백화점 참사는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이 책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그 당시 살아남은 이들은 소수였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생존자가 있었기 때문이다.그 당시에 비해,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가 그들이 기대를 저버리게 된 것이다. 압축경제, 수출주도형 대한민국 산업 구조는 기업에게 매우 관대하였고, 힘이 약한 개개인에게 엄격하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흔하지 않은 명품들은 섬풍백화점에 모여 있었고, 참사 당일에도, 그들조차 모르고 잇었던 상황들,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요행이 먹혀들고, 메뉴얼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불법 증축, 서초구 공무원 뇌물 사건이 서로 엮이면서,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스스로 어던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고 있었으며, 402명의 희생자가 삼풍백화점에 매물된채 발견되고 말았다. 1994년 성수대교, 199년 씨랜드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경주리조트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느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사회적 연대 , 불행, 참사를 기어가지 않고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재이며, 산업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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