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소크라테스의 말 -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깨닫는 지혜의 방법
이채윤 엮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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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5-)

지혜의 시작은 용어의 정의입니다.나는 아무에게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나는 단지 그들이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사람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중상모략자는 나를 때리지 않기 때문에 나를 해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내 영혼이 완전히 장님이 도리까 두려웟습니다. 자신을 찾으려면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35-)

인간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아는 현명한 사람들과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바보들. (-73-)

우정을 쌓을 때는 천천히 하라. 그러나 벗이 될 때는 확고하고 꾸준함을 유지하라. (-148-)

올바른 것과 그 밖의 미덕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모으는 사람은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으며 , 설령 행하려 하더라도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지헤로운 사람은 아름답고 좋은 것을 행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을 행할 수도 없고 행하려 해도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것과 그 밖의 아름답고 좋은 것은 모두 미덕에 따라 행해지기에, 저의와 그 밖의 다른 미덕은 모두 지혜라는 부른다. (-180-)

나의 말솜씨는 그들로 하여금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오직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27-)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해를 끼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선을 행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갖게 될 것이가. (-260-)

변화의 비결은 낡은 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285-)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무엇이든 순수한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몸을 버리고 혼으로 홀로 사색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논증으로 판단하자면, 우리가 갈망하고 우리가 마음을 두었다고 고언하는 지혜는 우리가 죽었을 때만 얻을 수 있고 평생토록 얻을 수 없는 것 같다. (-348-)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거이 아니라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더 즐거운 일들과 함께 당신의원칙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371-)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되는 운명의 열쇠고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끈질기게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회피하려는 성향은 그래서다. 그리스 시대의 현자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재판으로 사형을 언도 받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남긴 저작은 없지만,그의 제자 플라톤이 있었기에, 그의 생각과 그의 수사학은 지금까지 우리 삶의 생의 뿌리가 되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지혜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지혜란 용어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지혜를 차용한 것이다. 한글을 쓰면서,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의 저서를 조선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 학자는 일본 한자로 우리의 생각의 근원들을 용어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정체성에 친일이 잔존하고 있다.

사랑과 우정,이 두가자의 경계를 정확하게 규정지을 필요가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우정인 줄 알았지만, 사랑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사랑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인간의 욕망과 경계의 불분명함, 지혜롭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모든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 우정을 쌓을 때는 조금씩 조금씩, 티가 안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이 불편해 하거나,부담이 되거나, 서로 거리를 두고 싶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정은 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지혜의 성과이며, 결과물이기도 하다.

의인, 도쿄에서 지하철에서 취객을 구하다 죽은 이수현이 생각났다.그가 죽은지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기리고 있는 것을 보면,소크라테스의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 있다. 불멸과 신성함,이 두가지를 취하고 싶다면, 스스로 의를 취하고, 의인이 되어라, 누군가 결코 할 수 없는 일, 하지 못하는 것을 할 때, 우리는 그를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가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의인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삶의 근원적인 성찰 속에서,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약속을 지키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과감하게 내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후회로 첨철되어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말이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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