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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남자들은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면 추레해지기 마련이지만, 나의 스승은 매주 화요일, 깨끗하게 다려진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목에 '확대경'을 걸치고 나를 맞았다. 심지어 실내에서 모자를 쓰고 있기도 했다. 머리가 웃자라 있거나 면도를 하지 않아 얼굴이 석회빛을 띤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던 당신의 약속처럼, 만날 때마다 선생은 소멸을 향해 가는 자가 아니라 탄생을 향해 가는 자다웠다. 태어나기 전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그의 육체는 흙과 빛늘 반죽한 것처럼 작아지고 밝아졌다. (-10-)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선생님과 나누는 마지막 이야기를 유산으로 갖고파서, 나는 녹음기를 신줏단지처럼 모셨다. 혹여 버튼을 잘못 눌러 이 현자의 목소리가 허공에 날아가버릴 까 매 순간 두려워 하며.
그런 나를 꿰뚫어 보시고 선생님은 독창적으로 쓰러 하신다.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 놓을 참이야. 하지만 내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 왜냐하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45-)
"물론이야. 여섯 살 때부터 질문을 시작한 이래, 나는 타인과는 내내 껄끄럽고 소외되고 외로웠네. 내가 사는 내내 외로웠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 아무개가 외롭다니 우리가 찾아가서 좀 도와줍시다' 그래. 제발.오해하지 마시게. 그건 남이 도와줘서 없어질 외로움이 아니야.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 불리하지만.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
둥글둥글.'누이좋고 매부 좋고' 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 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 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108-)
"따지고 보면 윤리학을 죽인 게 심리학이야.'내가 약해서 저 사람을 죽인 게 아니야.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야.' 이렇게 분석하거든. 심리는 윤리적인 게 아니니까. 바닥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 바탕에는 유물론적인 사고가 있어.호르몬,. 전두엽...뇌과학으로 풀면 인간은 뇌의 전달물질에 따라 조종당하는 거야. 호르몬에 따라 흥분되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지고...윤리학은 정신적인 건데. 심리학이 생기면서부터 과학이 됐어. 뇌과학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윤리학의 자리를 심리학이 꿰찼고, 심리학이 인지론을 대신해서 AI 가 되고 있다네." (-138-)
스승의 눈물 한 방울
스스로 결점없는 영웅보다 자기감정에 빠져 울거나 웃거나 추억에 젖기를 좋아하는 나의 스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수다스러워졌고 더 귀여워졌다. (-209-)
"급히 다녀올 데가 있으니 음악이나 듣고 있으라고 하고는 집에 갔지. 유일하게 현찰이 될 만한 물건이 영어 사전이었어.그걸 전당포 대신 고물 책방에 갖다든준다면 당장 찻값.우동값 정도는 나오거든. 그걸로 데이트 비용을 썼지. 그렇다고 내가 '젊은 나이에 돈이 없어서 사전 팔다니 비참하다' 그랬을 것 같아? 아니야. 사전 팔아 우동 한 그릇 먹었으니, 셰익스피어가 쓴 것보다 더 많은 영어 단어를 내가 다 먹어치웠다고 기고만장했지. 몇 십만 영어 단어가 내 뱃속으로 싹 들어갔잖아. 그러고 놀았단 말이야." (-263-)
문득 그가 지구에서 사라지고 나면 아버지를 잃은 고아 같은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그가 나의 육친은 아니지만, 이어령이라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 내가 평생 기자로 살고 작가가 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기를 내서 감상적인 고백을 하는 순간에서 그는 매정하게 훌쩍 몸을 뺐다."자네가 내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경험한 문명의 지정학이 특별하기 때문이라네."
"저는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선생님은 또 문명을 바라보시는군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제가 쓴 인터뷰 기사에서도 선생님을 문명 선동가라고 명명한 적이 있습니다." (-287-)
"이번 만남이 아마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
이어령 선생이 비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299-)
1934년 1월 15일에 이 세상에 와서 , 2022년 2월 26일 그는 이 세상과 작별하였다. 삶에 대한 성찰 뿐만 아니라 큰 울림을 선물해 주고 간 참 스승 이어령, 8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의 끝자락까지 학자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자신을 기록하고, 자신을 인터뷰하며, 삶의 끝자락,마지막 그 순간에, 남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그의 마지막 라스트 인터뷰에 있다.
생과 사, 웰다잉, 그의 딸은 먼저 이어령 생 이전에 이별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삶의 회한을 삼키며 살아가게 된다. 학자로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그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문명이었다.그가 추구한 세계관, 그가 예견한 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저물어 가는 생의 마지막,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주고,자신의 말과 생각, 행동 하나한아 기록해 나감으로서, 스스로 갇혀진 체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어떤 슬픔이나 아픔이라도, 이어령에겐 눈물 한 방울에 불과하였다. 현자로, 이 시대의 문명선동가로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을 보고,자신의 생과 죽음을 보면서, 하나의 지적인 영감, 지적인 사유를 얻고자 하였다. 학자로서 마지막 소임과 책임을 다하려고 했던 그는 지정한 이 시대의 지성인이 되고자하였다. 물질적인 소유와 집책에서 자유로웠지만, 끈질긴 질문과 윤리, 철학에 집착하면서,스스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되고 싶어했을 것이다. 절대적인 고독과 절대적인 외로움 속에 살아야 했던 그가 바라본 세상은 그가 꿈꾸는 세상이었고,그 다음 후대가 바꿔 나가야할 인생의 제안을 그의 마지막 인터뷰,그의 마지막 유연 속에 은유와 비유적 표현으로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