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중무휴 김상수 - 부암동 카페냥 김상수 상무님의 안 부지런한 하루
김은혜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8월
평점 :
우리 삶에는 다양한 '5초의 가해자' 들이 존재한다. 상수를 불편해했던 손님이 귀엽게 느껴질 만큼 나에게는 수많은 5초의 가해자들이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고객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웃어야 했다. 상사의 성적인 농담에 동문서답으로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강의할 때 목이 터지게 말해도 버젓이 자고 있는 교육생에게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하며 걱정하는 척 말을 건네며 아름답게 상황을 이끌어가야 했다. (-20-)
상대가 싫어하면 그 행동을 계속하면 안 된다. 안 되는 거다. 그럼 나는 왜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상수가 처음부터 물어보리거나 바로 도망을 갔다면, 나는 진작에 상수 안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싫어하는 그 또라이도 당신에게 물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21-)
상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것을 먹을 때 나를 떠올릴까? 어엿한 부암동 셀럽인 상수는 츄르 말고도 맛있고 다양한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때 엄마의 음식을 떠올렸던 것처럼, 상수가 츄르를 먹을 때는 나를 생각해줄 거라 믿고 싶다. (-130-)
세로로 뾰족한 동공은 고양이나 뱀처럼 작고 매복사냥을 하는 야행성 포식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눈동자인데,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는 기능도 있다. 원형 동공은 먹잇감을 덮쳤을 때 각도나 거리의 정확도를 높여 사냥의 성공을 돕기 위함이다. (-154-)
고양이는 '요물'이다. '요물'의 사전적 의미는 요망스러운 것, 간사하고 간악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요물'은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여물'의 제주도 방언인 '요물'이다. (-165-)
누구에게나 타이밍은 정말 중요하다. 고양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나는 바쁜 업무가 정리되고 커피 마시며 한숨 돌릴 때쯤 자연스럽게 상수를 찾는다. 일단 상수 앞에 무턱대고 장난감을 들이댄다. (-184-)
사람한테 관심이 없을 뿐이다. 사람만 보면 숨어버리는 예민함은 없지만,갑자기 만진다거나 소리를 내면 귀찮아서 도망가고 어쩔 땐 물어버리기도 한다. 고양이의 습성과 본능을 가진 어쩔 수 없는 고양님이다. (-213-)
상수의 하루는 별 거 없다. 먹고 자고 놀고, 세상 부러운 이 3가지가 상수 일상의 전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단순함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자는 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노는 시간이 충분하도록, 먹는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이중 하나라도 균형이 깨지면 상수는 아프다. (-233-)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빠지게 디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반감된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에 가치를 두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에 가치를 우선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반려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동물과의 교감이 있는 사람에게, 반려동물은 자신의 안전과 옆자리를 인간에게 허용한다. 파양되었던 상수가 저자에게 다가오게 된 이유,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부암동 까페냥 김상수 상무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부암동 명물이자 요물이었다. 부암동 작은 까페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에게, 까페 터줏대감 김상수가 있었다.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항상 겪게 되는 상처와 함께 한 시간들을 상수를 통해 치유하게 되고 위로를 얻게 된다. 상수의 단순함 본성에 자신의 마음에 행복이 깃들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5초 가해자들, 그 가해자들이 나를 만들었고,내 삶의 상처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또라이라고 표현한다. 사람에 대해서 관심 가지게 되고, 사랑을 하고, 서로에 대해 이해와 공감, 교감으로 가까이 한다는 것은 느낌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호홉을 맞춱 간다는 것이다. 서로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다. 인간 사회에 회복되어야 하는 것, 교감과 공감, 이해다. 그러한 삶의 친근한 코드가 맞아간다는 것은 저자에게 행복과 기쁨이 찾아오게 되는 하나의 이유였다. 행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인간의 손을 타게 되는 귀여운 고양이 상수의 소리들, 그상수가 장수고양이가 되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어린 마음 씀씀이 생각이 도드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