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어느 지방 방송작가가 바라본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
권지현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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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라 밝힌 그녀는 나의 정성이 갸륵해 보였는지, 괜찮다면 내가 쓴 습작 원고를 봐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방송사는 얼굴을 비치고 안면을 트는 것이 중요한 곳이므로, 시간이 나면 놀러도 자주 오라고 반려했다. (-19-)

지방방송 라디오를 누가 들을까 싶지만, 지금도 방송을 시작하면 실시간으로 문자가 들어온다. 잘 듣고 있다며 출석 체크 문자도 오고, 어디 어디 사고가 났으니 조심하라는 연락도 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달라는 생일 축하 메시지도 온다. 그러면 진행자가 방송에서 대신 소개를 해주거나 답을 해준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라디오를 매개로 라디오 너머의 누군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53-)

무인도에 혼자 사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혼자 움막을 짓고 산에서 더덕 캐서 먹고 살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놀란 장면이 있다.움막 안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쥐를 내쫓는 모습도, 산비탈에서 위험천만하게 나물을 채취하는 모습도 아닌, 안경을 잃어버리던 모습이었다. (-109-)

경험과 깨달음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주는 사람과 더 좋은 방법을 강요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당연히 다르게 들린다. 공감과 이해 위에서 스스로 깨닫고 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발전을 끌어낼 수 있지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은 저항감을 키울 뿐 아니라 때로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위 '꼰대질' 이라는 것 또한 '내가 해봤기 때문에 다 안다' 는 가정 하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157-)

나이 먹은 국장과 팀장들이 흘리던 시시껄렁한 음담 패설과 돈 받으며 일 배우는 게 너희에겐 멀마나 좋은 기회인 줄 아느냐 묻던 이상한 충고, 원고료가 적다고 건의하면 편의점 알바 하면 더 많이 번다더라 하고 응수하던 같잖은 협박성 발언까지. 그들은 무엇이 그리 당당했던 것일까. (-207-)

저자 권지형는 현재 TBN 한국교통방송 대구본부엣거 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원고를 쓰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지역 방송작가가 약자로서 처한 현실과 노동과 연대의 의미가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큰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노동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조건이며,꿈과 희망을 위해 필수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약자로서, 꿈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노동은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작가로서, 불합리함과 열악함, 무명으로 살아야 하는 삶, 고용주가 흔히 하는 말, 열정페이를 주면서, 배우면서, 돈을 주는 곳이 어디있냐고 하는 자신만의 독백이 노종의 가치를 훼손시키며,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즉 노동에 연대가 연결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만 있지 연대가 없기 때문이다. 연대라는 것은 서로 의지하고,나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이다. 공교롭게도 연대는 돈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즉 자본가에게 연대는 매우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수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은 바로 그 연대에 있었다. 노동자의 연대는 반대로 나약하고, 연약하다. 노동자 간의 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제약이 있는 이유,연대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을 위한 적당한 타협, 돈으로, 힘으로 적당한 합의를 도출하는 원인이 되고 잇었다. 서로 연재하지 못하고, 협심하지 못하고,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끈끈하지 않은 연애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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