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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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는 장난감 말 한 개와 황실 문장이 새겨진 탁상 시계를 선물로 주었다.메이지는 말했다.

시간을 아껴라. 시간으로 세상을 잴 수 있다. 부디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져라. 새롭게 태어나라.

시종장이 시계를 받들어 이은 앞에 내려놓았다.

메이지는 또 말했다.

공부할 대, 시계를 책상 앞에 놓아라. 짐이 내리는 시간이다. (-13-)

한동안 안중근의 조준선은 흔들렸다. 먼 짐승을 겨누면 표적 너머로 무언가 흔들려서 맞힐 수 없는 것들이 어른거렸다. 표적은 조준선 너머의 안개 속으로 녹아들어간 듯 싶었다. 오른 손 검지가 방아쇠를 당길 때 총구가 오른쪽으로 쏠리면 총알은 빗나갔다. 가늠쇠가 움직일 때 안중근은 실패를 예감했다.짐승이 달아난 자리가 휑했고,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짜기를 울린 총소리가 잦아들고 나면, 표적을 맞히지 못한 초의 무게가 허허로웠다. (-62-)

하얼빈역 구내에서 철도는 여러 갈래로 겹쳐 있었다.발이칼 호수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았다. 평양에서 오는 철도와 대련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았다.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널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널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 (-137-)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의 허리를 묶어서 헌병대로 끌고 갔다. 하얼빈역은 러시아의 관할구역이었으나 러시아 지방법원 판사는 안중근이 한국 신민이므로 이 사건의 재판 관할권은 러시아에 속하지 않는다도 결정했다. 결정은 신속했다. 러시아는 서둘러서 사건에서 손을 뗐다. 러시아 헌병대는 안중근을 하얼빈 주재 일본 총사령관으로 인계했고, 안중근은 지하 구치소에 갇혔다. 구치소에서 취조실로 끌려갈 때 안중근은 복도 저편으로 허리가 묶여서 끌려가는 우덕순을 보았다. (-186-)

관동도독부는 이토 살해 사건의 피의자들을 호송하기 위해 마차를 새로 제작했다. 대련에는 마땅한 공장이 없어서 본국에 주문해서 들여왔다. 피의자들을 여순감옥에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까지 호송하려면 백옥산 아래 시가지를 지나야 하는데,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므로 마차의 외양을 재판의 품격에 맞게 갖추었다. 차 안에 칸을 나누어서 피고인들을 실었고, 뒤에는 간수 두 명이 섰다. 차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휘장을 드리웠다. 지마헌병대가 마차의 앞뒤에 붙었고 마차가 지나가는 시가지에 사복경찰들이 배치되었다. 여순감옥의 구리하라 전옥이 뒤를 따랐다. (-224-)

저는 이토를 쏘아서 쓰러뜨린 후에 총알이 정확히 즐어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옆에 있는 세 명을 쏘았습니다. 세 명 모두 총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후에 다들 회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빌렙이 안중근의 말을 끊었다.

-도마야, 너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야?

이 모든 것이 저의 모자람이고 저의 복입니다.이 복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268-)

김훈의 김훈의 『남한산성』 에 이어서, 『하얼빈』을 읽게 된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총의 서슬에 사살되었다. 일곱의 총알을 가지고 있었던 코레아 우라, 안중근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을 예감하게 된다. 아직 그의 시신과 그가 쏘았던 총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그의 역사적 증언들을 안중근 재판 당시 살았더 인물들의 역사적 증언과 사진으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도마 안중근,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가 행했던 국가적 대업은 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하지만 그에게는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었다. 하얼빈에서,이토를 사살하고, 여순감옥에 잡히면서, 전세계에 주목받게 되었던 그 당시, 관동도독부는 발칵 뒤집히게 된다. 러시아의 입장, 일본의 입장, 미국의 임장이 충돌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말을 타고 다녔던 일본 헌병대, 그들은 안중근과 안중근의 처자식까지 취조를 통해 , 죄를 쌍끌이 어선처럼 끌어당기게 된다. 그리고 함께 이토를 처단하였던 동조자 우덕순, 김성백, 정대호, 김아려, 역사속 실존인물들을 등장시켜, 안중근의 마지막 순간을 소설 『하얼빈 』 에 재현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안중근,그의 손에 의해 죽었던 이토 히로부미, 그 주변 사람들이 지나온 일상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청년 안중근의 시간, 코레아 우라를 외쳤던 그에 대해서, 아직 미궁으로 빠져 있는 안중근의사의 1919년 10월 26일 그날을 복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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