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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사이를 산책하기 - 여성동아 문우회 앤솔러지 ㅣ 숨, 소리 2
여성동아 문우회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7월
평점 :





어린 빈이는 초등 3학년.고작 열 살이다. 영어 배우기에는 나이가 어릴수록 좋아서라고? 그게 아니었다. 혼자서 빈이를 키우던 젊은 엄마다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 했으니까 빈이를 필리핀에 떨군 거였다. 명랑한 빈이는 낮에는 누나들의 귀염을 받으며 잘 지내는 득하지만 밤에는 무서움과 외로움에 떤다. 보다 못해서 내 방으로 불렀더니 자다가 불쑥 내 젖가슴을 주무르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 (-21-)
-겁외현재(劫外現在).
홀연 떠오르는 말입니다. 무슨뜻인지 설명하고싶지만 어렵습니다. 추억도 현재고, 현재도 현재다, 이렇게 설명해도 모자람을 느낍니다.
"언니, 꼭 출가해야 해? 참선 잘 된다며,어디서든 잘 하잖아. 그런데 왜?이유라도 말해 줘. 언니." (-46-)
물 속으로 레몬을 쏟아부으며 그 애와 라즈베리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새벽을 생각했다. 그날 둘이 먹다 남긴 라즈베리 아이스크림 통이 아직도 냉동실에 있다. 갑자기 궁금해진 나는 레몬을 씻다 말고 냉장고 쪽으로 가서 냉동실의 문을 역고 얼굴을 들이밀었다.차가운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 이젠 그 애가 아니라 '그' 라고 해야 할 만큼 시잔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하다. (-83-)
"여자가 살든 아줌마로 살든 그건 네 맘이고! 조상님이야 이미 돌아가신 분이니까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네 딸은 어떻게 볼래? 조상님음 몰라도 네 자식한테는 죄인이야? 제 시집갈 때 아비로 나갈래? 어미로 나갈래?" (-111-)
동이와 청이가 굴 마당에 함께 나왔다. 청이는 2학년이지만 동이는 아직 학교에 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늘 가는 데 실가는 것처럼 청이가 학교에 갈 때면 언제나 동이도 함께 나왔다. 올수가 등교할 아이들의 인원수를 하나하나 확인한 후 학교로 향했다. (-143-)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틀린 소리였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생각은 나와 별개인 생명체처럼 그저 일어나는 거였다. 대부분의 생각은 뜬금없이 일어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돌아다녔다.
'괴로워서 이대로는 살 수가 없네.'
철학을 전공하고 정신 분석을 받고 심리치료를 공부했다. (-172-)
우리에게 주어진 찰나의 순간들을 문학에 담아 놓는다. 어떤 수단이나 도구 없이 오로지 날 것 그대로의 문학적 나체에 , 문체라는 옷을 덮어서, 우리에게 날것에 양념을 입힐 때가 있다. 그대로 응시하기에는 불편하고, 불공정한 하나의 장면들이 서서히 깨어나게 되었으며, 나에게 필요한 고유의 내면 세계를 읽어 나갈 수 있는 무의식이 가지는 강력한 동기의식을 내면화하곤 하였다.
여성동아 문우회 앤솔로지에는 여섯 작가에 의해 여섯 단편 소설이 소개되고 있었다 1984년부터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그들의 문학적 사유는 우리 삶의 시대적 상황과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하였던 우리의 삶의 밑바닥에는 소수자에 대한 절망과 고뇌를 외면하고 있었으며, 오로지 나의 생각이 나에 대한 정답으로 생각하면서, 주어진 삶에 대해, 소수를 외면하면서 착각하면서 살아오게 된다. 그래서, 어떤 착각을 느끼게 되면, 문학을 통해서,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 하나하나 시침과 분침을 재조정할 수 있다.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깊은 연민이 샘솟게 되는 그 순간이 반드시 내 앞에 놓여지게 되는 순간이다.
나이를 떠나서, 삶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비슷한 경험, 비슷한 감정과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른에게 감춰진 내면속 아이가 숨어 있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대리만족을 느끼게 되고, 그 아이는 그런 아픔을 겪는 시행착오를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소설 한 켠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사회가 만든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관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즉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어떤 행위를 할 때, 법적인 혜택이나 보호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그런 경우에 대해 법의 사각지대,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즉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여러가지 불법적인 행위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이들의 마지막 수단이 되고 있었다. 삶을 응시하고, 삶에 대한 갈망이 현재하지만,그것이 결단코,나를 이해시킬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는 건 여기에 있다.서로 보듬어 안아가며, 서로에 대해 배려와 겸손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것도 학습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되물어 본다.여섯편의 소설에서, 일상 속의 찰나의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