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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색과 체 산문집
색과 체 지음 / 떠오름 / 2021년 11월
평점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백발이 성하게 된 할머님과 할아버님의 일상과 그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담고, 그들이 이별하는 순간을 답은 영화다. 함께한지 몇 십년이 된 부부 사이지만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이 가득하고 행동 하나하나에는 자상함과 배려심이 배어 있다. 사랑이 그저 심장이 떨리고 설레는 것에서 오는 거라면 할머님과 할아버님의 모습은 무엇일까. (-19-)
모든 연인 관계는 특별하다. 완벽하게 남이었지만 연애를 하는 기간동안에는 친구 아니 더 나아가 부모님보다도 더 가깝도 특별한 존재가 된다. 연인과는 부모님처럼 서로 기댈 수도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연인으로서 서로의 사랑을 마음껏 주고받을 수도 있다. 나의 그 어떤 것이든 돼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연인이기에 더 각별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최악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41-)
최고의 사랑은 없지만 최선의 사랑은 있다.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 (-58~59-)
순간의 새로움은 잠깐의 설렘을 줄뿐이지만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는 매 순간 새로운 나일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신뢰는 단단해지도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모습마저 그 사람 앞에서는 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새로움이었다. (-102-)
시간이 흐르고 느낀건, 모든 마음에는 크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분명 컸지만 나는 그보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랑보다 고통이 더 컸다. 이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 고통의 크기가 사랑보다 컸다. 오직 사랑만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기에 다른 내 마음들을 돌아보지 않았다.그래서 몰랐다. 내가 이토록이나 아파하고 있는지. 얼마나 스스로를 외로움의 절벽으로 내밀고 있는지. (-163-)
나 스스로 온전한 나일 수 없을 때, 우리들은 결핍을 느낀다. 그리고 그 결핍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 스스로 온전한 나일 수 있을 때에는 누군가에게 나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같은 것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마냥 아쉬워하게 되거나, 충분하게 고마워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사랑을 시작할 때 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이나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가도 중요하다. (-220-)
연인 관계에서 잦은 만남은 지겹고, 잦은 이별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사랑의 일관성과 반복되어지는 사랑의 속삭임 과정에서, 열정은 식어가게 되고, 설레임은 마저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부부관계는 인륜에 의한 계약관계로 생각하고, 부모와 자녀 관계는 천륜처럼 끊어질 수 없는 관계로 생각하는 우리의 독툭한 정서 상, 유교적 도리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한 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 세우러호 사고 때, 아이들의 죽음 사후 보상금을 챙겨갔던 유갑족의 부모에게 분개했던 이유는 천륜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천륜이라 쓰고, 계약관계를 보일 때, 우리으 너무마 불편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지속적이어야 하며, 서로를 탐구하면서, 긴장을 놓지 않는다. 서로에게 기대면서, 설레임이 지속되길 바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은 것은 우리 인생의 보편성을 듸고 있다. 최고의 사라은 아니더라도, 최적의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방법을 우리가 모랐을 뿐, 사랑에 대해서, 백년해로를 원하지만, 현실은 백년해로를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며, 지겹거나 지치지 않는 사라을 위해서, 각자 사랑에 대한 선이 필요했다.
내 기억 속의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와 <워낭소리>가 있었다. 익히 보았듯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은 결혼 축사에서, 부부의 백년해로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소녀처럼, 아끼고, 자상하고, 보듬으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의 끈을 놓을지언정 사랑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특별함과 각별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우리가 추구하고 싶은 사랑의 본질을 여실히 드런매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한편 <워낭소리>는 날 것 그대로의 실사판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에 대한 애틋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할아버지는 소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사랑이 영화 속에 있었다. 경이로움과 특별한 동물과 사람의 교감에 대해서, 소의 눈망울 속의 따스한 온기가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즉 사랑이란 두 영화에서 보여지듯, 서로에 대한 각별함이 있어야 하며, 표현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의심과 섭섭함, 서러움이 지속될 수록, 사랑의 깊이는 점점 낮아지게 되고, 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인간의 마음의 밑바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삶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한며, 존중과 배려, 상호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고, 서로의 삶을 지켜주면서,마지막 순간을 응시할 수 있다는 깊은 신뢰를 보녀주는 것, 저자다 말하고 싶었던 사랑의 원칙과 사랑에 대한 경계와 선긋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