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너는 세상의 터지는 것들을 되뇌었다. 무너지고 뚫어지고 찢어지는 것들. 홍시가 터지고 제방이 터진다. 입술이 터지고, 솔기가 터진다. 코피가 터지고 폭죽이 터진다. 분통이 터지고 울음이 터진다. 운수가 터지고 일복이 터진다. 꽃망울이 터지고 가슴이 터진다. 터짐을 헤아리던 너는 아주 오래된 노래 하나가 떠돌라서 피식 웃어버렸다.'터질 거예요,내 가슴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나면.'당신이 떠나고 터지지 못했던 마음이어서 속이 곪은 걸까. 얻지로도 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발이 묶인 걸까. (-26-)
쓰세요.
카메라의 깜박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너는 말랬다.
세상으로 향하는 뭄이 닫힐 때, 우리느 홀로 앉아 무언가를 써야 합니다. 나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혹은 나 아닌 것에 대하여, 너 아닌 것에 대하여, 그리고 , 세상이 아닌 것에 대하여.
쓰세요. 당신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일에 대하여, 가볍고 사소한 불행, 무겁고 힘겨운 불행, 가벼웠다가 무거워진 불행,힘견웠다가 사소해진 불행을 애기하세요. 그 불행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끝났나요? 어떤 전조 혹은 예감은 있었나요? 불행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만약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지금은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불행으로 인해 당신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쓰세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문득 사라진 것,왔다가 떠난 사람, 잘 작동하다가 망가진 물건, 갑자기 바뀌어버린 가치관, 마음 속에 존재했으나 증발해 버린 감정에 대해 얘기하세요. 잃어버린 그것은 어디에서 왔나요? 그리고 어디로 갔나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상실했나요?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요?
쓰세요. 당신이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오늘의 당신과 10년 후의 당신은 어떻게 다를까요? 당신을 둘러싼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새들은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나요? 당신은 혼자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나요?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변해버린 것과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에 감사하나요?
쓰세요. 어제까지 할 수 없었지만 오늘부터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입에 대지 못했던 음식을 처음 먹어본 날, 수영이나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날, 죽고 싶도록 괴로웠다가 문득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툭툭 털고 일어난 날에 대해 얘기하세요.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되어, 나는 법을 배운 아기새가 되어, 최초의 환희 순간의 황홀을 느껴보세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평범함에서 특별함으로 넘어가는 그날,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달려가나요? 누구와 함께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은가요? 당신이 손을 뻗으려 하는 ,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쓰세요. 세상의 모든 '처음'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순간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마지막' 에 대하여. 하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서 은유를 찾아내고,은유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세요. 보이지 않는 것을 빛나게 하고, 소리내디 않는 것을 노해하게 하세요.
쓰세요.기억을 잃어버린 하루에 대하여, 달과 행성과 외계인에 .당신이 사랑하는 노래와 그림에 대하여. 명사와 ㄷ공사와 형용사에 대하여 . 새로울 것도 없고 빛날 것도 없는 당신의 일과에 대하여. 실제로 일어난 일, 일어나지 않았으나 일어났을 법한 일,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세요. 정면을 보고 뒷모습을 보고 뒺집어 보고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세요.이랬다면, 저랬다면, 가정해 보고 상상해 보세요.당신이 무언가를 쓸 때 , 당신은 여기가 아닌 거기로 갑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을 갖게 됩니다. 단 하나릐 우주에 갇혀 있는 당신은 무한한 우주를 만납니다.
너는 카메라를 끄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기다렸다는 듯, 날카롭고 길게 재난문자가 울린다. 세상으로 행하는 문 하나가 또 닫히는 소리다. 어두워가는 방 안에 홀로 앉아. 너는 쓰기 시작한다. 너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혹은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에 대하여. (-68-)
황경신의 저서 『초콜릿 우체국』, 『국경의 도서관』 을 읽은지가 2016년이다.어느 덧 6년이 지나서 황경신의 신간 『달 위의 낱말들』 을 읽게 되었다. 에세이집, 산문집임에도, 나의 기억 속에 작가 황경신의 문장 구조는 ,여느 에세이 집과 다른 특별함, 상당히 난해한 문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날 것 그대로, 아날로그적 정서에 의해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녀의 전작을 읽은 편견에 따라서, 『달 위의 낱말들』 을 읽게 된다.
이 책은 각각의 키워드를 언어적 관찰력을 활용하여, 깊이 파고 들어가고자 한다. 작가는 하나의 키워드의 개념과 본질에 충실하였고, 삶의 경험과 체험을 응축하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것조차도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꽃은 피어나는 것이 아닌, 터지는 것이다. 우리는 '터진다'에 대해서, 여러가지 중의적인 문장 표현이 있다. 작가는 그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으며, 가슴이 터진다. 속이 터진다, 입술이 터지고, 분통이 터질 때, 우리는 터진다 라는 문장을 사용하곤 한다.그리고 나는 더워서, 속이 터진다.
인간은 기록한다. 기록은 여러가지 형태로 ' 쓰인다'에 포함된다. 내가 경험한 것도 쓰여지고, 나의 첫경험도 쓰여질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과거 속 어떤 특별한 장면이나 다시 들여다 보고 싶은 장면도 쓰여질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히딩크 감독에 의해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천수는 유투브를 통해,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고자 하였다. 나의 경우 ,IMF 는 쓰여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곤 한다. 여기서,우리는 미래를 예상하며, 글을 쓸 수 있고, 나만의 사유도 쓸수 잇다. 은유도,비유도, 직유도, 쓸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쓰여 한다. 작가 황경신은 우리가 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특별함에 대해서, 내려놓는 법을 다섯 페이지에 걸쳐서 쓰고 있었다. 쓰다 보면, 오류가 날 수 잇고,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럴 댄 고치면 되는 것이다. 퇴고 작잡업을 거치게 되면, 정제된 글 하나가 탄생될 수 있다. 지혜라는 것, 지식이라는 것, 경험이라는 것은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누구나 쓸 수 있고,누구를 쓸 수 있고, 사물에 대해서 쓸 수 있다. 지구 상에 내가 느끼는 오감에 의한 모든 것은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상황은 글을 쓸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