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뭔가에 삐치면 말을 하기가 싫어진다. 부부간에도 삐져서 몇달간 말을 않고 지냈다는 얘기를 한다. 기사가 화가 나서 삐져 있는데 승객이 뻔한 질문을 해온다.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어디 가냐고 묻는 승객이 많기에 그냥 흘려듣는다. 진짜 모르는 승객은 버스에 오르기 전에 묻는다. 그러나 역시 시원한 대답을 듣기가 어렵다. (-23-)

"박물관 가요?"

안간다니까 몇 번 타야 되느냐고 또 묻는다. 거기 가는 버스가 한 두 대도 아니고 뒤에 버스가 줄줄이 서서 애 차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현실은 가요, 안 가요 수준의 단답형 대답만 가능하다. 느닷없이 질문에 퍼뜩 생각도 안 나고 모드 전환을 해서 떠오르는 대로 답을 한다 해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684, 49, 9, 62, 554, 559.ㅣ 31, 644.,685....' (-32-)

새벽에 밥 먹고 바로 2리터 생수부터 산다. 생수를 큰 것으로 사는 이유는 물을 많이 쓰기도 하지만 잘 때 목침으로도 쓰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콜라병처럼 라인이 살아 있는 것이 좋다. 목에 딱 끼기 때문이다.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뇌파'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46-)

아예 빨강, 노랑, 파랑으로 기사의 감정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감정노동자가 가습ㅁ에 명찰 대신 '감정 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해본다.

전주 시내버스기사가 하루 열여덟 시간 운행 후 스트레스 수치를 잰다면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51-)

버스기사는 근골격계 질환이 많다. 앉아서 장시간 반복 동작을 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많은 듯하다. 이백여 명의 동료 중 한 두 명은 늘 병가 중이다.

교통사고에 운동 중 부상까지 더해져 입원 소식이 잦다. 급여 체계가 일당제여서 한 두 달 병원 신세를 지면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골치다. 기사들이 보험 가입에 열심인 이유다. (-63-)

"어이 기사 , 이 버스 몇 시 차여. 여기서 얼마를 기다렸는지 알어?"

눈물 나서 대꾸도 하기 싫다. 대꾸도 않는다고 또 시비다. 앞차를 빼먹은 동료도, 항의하는 승객도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분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그런 경우에도 무심하게 대꾸를 해주는 형님이 있다. 한번 맘먹고 나섰으면 모두 감수해야 한단다.

"아 예, 앞차가 사고라도 났는갑만요." (-77-)

시내버스 삼 년이면 예측의 모눈종이가 촘촘해진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승객들의 온갖 비정상이 단번에 읽힌다. 예측 이전에 느낌이 있다. 알파고가 바둑은 이겼지만 인간의 느낌만큼은 흉내도 못 낸단다. '왠지 모를''뭔가 싸한' 그 느낌 말이다. 분명 저 승객이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며 오라왔고 전주 시내버스에서는 보기 드문 금테 안경에 젊고 깔끔한데, 수고하신다는 인사말에 교만이랄까? 뭔가 이상한 이 느낌은! 예측을 통해 닥쳐올 불행에 미리 대비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된다. (-114-)

누가 와락 내색은 안 해도 사고가 잦은 동료는 발발이 잘 안 선다. 아무리 잘났어도 기사는 일단 사고가 없어야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119-)

생판 처음 보는 기사라도 대형차끼리는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는 전통이 있다.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졸지 말고 안전운행 하세요.'

'애쓰십니다.' (-124-)

6. 버스를 올라오면서 구시렁구시렁하지 말것. (시내버스 한두 번 타는 것도 아닌데 속 터지더라도 안으로 삼켜라. 당신의 불행이 기사와 승객에게 깊숙이 전이된다.) (-139-)

4.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다고 해서 신호 걸려 있으니 내려달라는 소리는 말것.(배달 오토바이나 자전거 심지어 차들도 틈만 있으면 순식간에 버스 옆으로 파고든다.) (-140-)

둘, 정류장 주변에 불법 주차된 차들도 많고 차선 구분 없이 교통이 몹시 혼잡한데 승객마저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셋, 딴 생각하다 정류장에 있는 승객을 보지 못하고 멍하니 지나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177-)

시내버스를 몰고 나가면 곳곳이 터널이다. 자칫 세상 보는 시야가 좁아져 자신에게 갇혀 버리는 수가 있다.

'이 짓 말고 다른 먹고 살 일 없나?'

그러다가 민원 나오기 딱 좋다.

동료들과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씩 나누어 시시덕거리다 보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한결 수월하다. 누구든 만나면 서로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커피 한잔해야지?" (-212-)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도하지 않은 차별과 혐오가 반복된다.나의 의도와 무관한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 화가 될 수 있고, 그 화의 이유를 모른다면, 상대방의 인격을 뭉개 버리는 참극을 만들 수 있다. 직업에 대한 이해의 한계가 부르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서로 상해를 깊이 느끼게 해 주는 상태까지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그 대접을 받지 못하는 버스 기사, 버스 운전 기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우선 필요하다.

이 책은 버스사용설명서, 버스기사 사용설명서다. 학생들이 제일 많이 타는 친숙한 대중교통버스, 우리가 버스를 탈 때 경험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버스 기사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격일로 18시간씩 운행하고 있다. 시내버스 기사의 불친절에도 핑계가 있으며,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예전에 버스를 잘 못 타서, 엉뚱한 곳으로 갔던 기억, 돌아서 가야 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 버스 기사의 타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내가 더우면, 그들도 덥다는 것을 사실 몰랐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타박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에 대한 지적이며, 다음에는 제대로 탔으면 하는 버스기사의 소소한 욕망이 숨겨 있다.

버스와 버스가 서로 중앙선을 지나치면, 손을 흔든다.관광버스, 시내버스, 시외버스 할 것 없이 말이다. 처음엔 서로 동료이니까 손을 흔든다고 생각했는데, 그 손인사는 서로의 안전을 챙겨주는 작은 제스처, 의사소통에 해당되고 있다. 졸음을 쫒아주는, 버스의 상태를 체크하는, 그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 책을 통해 꼼꼼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서로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나의 부족함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고, 서로에 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말 한마디에 감정으로 전환되고,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기술이 발달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눈높이가 달라지면서, 말생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중교통의 상징이 되어 버린 시내버스를 탈 때, 잠깐이나마 버스 기사의 힘듦과 어려움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책 한 권, 버스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 , 참고 도서로 선택한 책을 통해 ,버스사용설명서를 깊이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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