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 일 덜 생각하고 K-포엣 시리즈 26
문동만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742-1.jpg

『밥 차리러 가는 당신 때문에

나는 살았다.

륽 묻은 손으로 씻어준

알갱이들 때문에

밥을 차리러 간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이어가며 살 수 있었다.

쌀을 구하려 손발이 닳던 노동 때문에

화구에 불을 넣고 연기를 쬐던

주름진 노역 때문에

수심이 깊은 밥주걱 때문에

계수대로 쓸려가는 수잿물처럼

아무것도 아닌 인생 때문에

밥물이 한소끔 끓을 시간만큼도

못 살다 간 인생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들어가 밥이나 하라는 말은

쉰밥만도 못한 말

밥을 버리라는 말

밥의 자식이 아니라는 말

불내의 식구가 아니라는 말 (-12-)

갈비뼈를 얻다

자전거 타고 핸들을 꺾다 하늘로 떠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유리창에 부딪친 새처럼 바악에 널브러졌고 집으로 가는 길은 아득해졌습니다. 사위도 정신도 어두워지고 어렴풋이 누군가들이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측백나무와 은사시 울타리, 장보러 가다 말고, 말고 라는 발걸음이, 멈춰 선 발걸음들이 멈추려는 숨을 살렸듯.

그들이 차를 한편으로 통행시키며 구급차를 불러주고, 말을 시키며 연고를 불어주던, 소란하되 나지막한 숨결들이었습니다. 안부를 물어주던 핏줄등이 물 같은 피가 됐으므로, 나는 나를 물어주는 말들이 그리웠을 겁니다. 생각나지도 않는 그녀들이 누구였을까요.

누이였을까요. 엄마였고 동창이었을까요. 식당에서 밥 주는 이모였고, 요구르트 팔던 바쁘디 바븐 이브들이었을까요. 그들이 한 끼니 저녁밥을 충분히 먹을 시간만큼, 금이 간 내 갈비뼈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차가오나 서럽지 않은 바닥에 누워 생각해보니, 아담의 갈비뻐를 추려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금이 가버린 가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어느새 달려온 나보다 한참 작은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를 타며, 아늑한 추락의 피안 속으로 스며들던, 사이렌 소리도 음악이었던 갈비뼈 얻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15-)

설운 일 덜 생각하고

엄마

콩밭도 없는 세상으로 가셨으나

완두콩 남겨두고 가셨네

나는

살 빠져나간 콩밥을 지었네

맛있게 먹고

설운 일 덜 생각하며

풋통처럼 살아라. (-41-)

고아

고아라는 말이 좋을 때고 있었다. 어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였으면 더 좋았을 날들이 있었다. 엄마의 다리는 뱀비늘처럼 각질을 떨구며 말라갔다. 내가 맨날 만지고 자던 당신의 젖가슴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당신은 정월 초하루부터 나를 고아로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죽만 몇 숟갈 들다 말고는 밥상 옆에 맥없이 누웠다. 내 눈이 마주치자 환삼덩굴 같은 까칠한 손을 가까스로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다시 못 볼 사람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한생을 비좁은 눈주름에 다 담아서 말없이 말했다. 당신은 늘 눈이 아팠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도 그 아픈 눈만 주고 갔나. 눈빛이 새발자국 같이 가슴에 찍혀서 방향도 없는 화살표를 남기는 화인을,이별이라고 해야 하나. 눈이 눈을 떠나서 돌아볼 수 없는 사이를 이제는 고아라고 해야 하나.마침내 고아가 되고나니 외롭지 않아졌다. 미친 놈처럼 더 웃고 살게 되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못 웃고 산 당신들 웃음을 마저 사느라, 그것이 고아의 사명, 진물 흐르던 눈빛들의 탕진. (-45-)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내곁에 머물러 있었던 그 누군가가 내 곁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나의 삶은 현실과 환상을 서로 구분짓지 못한 상황에서, 황망할 때가 있다.살아가는 동안 서로 겪어야 했던 지난날, 우리 삶 속에 긷들었던 작은 인생 경험 속에 감춰진 시인의 깊은 해석이 층층히 쌓이게 된다면, 비슷한 삶 속에서,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시인 문동만, 『설운 일 덜 생각하고 』 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삼켜지곤 하였다. 우리는 언젠가 억울한 순간, 슬픈 순간과 무지할 때가 있다.모호한 감정들이 '설운' 에 함축되어 있으며, 내 삷 속에 묻어나 있는 살운 흔적들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의도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슬픔 속에 감춰진 엇박자 그대로 놓여진 우리의 삶의 모순이 시집에 '풋콩'에 내재되어 있었다. 즉 우리는 설운 일을 느끼며 살아가는 풋콩에 불과했다.그리고 언젠가는 풋콩인채로 고아가 되곤 한다. 삶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 속에서, 결코 어긋나지 않는 여러가지 상황들, 그 상황에서 ,모면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인생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시인의 어머니의 인생에서, 밥을 해결하는 것이 급금선무였기에, 쌀밥과 콩밥이 서로 섞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생존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설운 일이었다.

고아가 된다는 것은 설운일 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고아가 됨으로서, 우리는 그것이 고마워야 하는 당위성을 찾아보아야 할 때이다. 내 인생의 자유로움은 내 부모님이 부재할 때, 외로움과 함께 이해가 되곤 한다.자유롭고,계획되지 않는 상태,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항상 부유할 떼가 있다. 삶이란, 자전거에서 하늘로 붕 뜨는 그 순간에 느껴질 것이다. 한순간이 찰나에 내 삶이 삶에서 죽음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자신의 자전거 에 대한 결험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함과 남다른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갈비뼈를 얻다』 에 넣고자 하였다. 인간은 태어나서, 세상을 첫 경험한 날것 그대로인채, 설운 일이 생기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설운 일은 반복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