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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ㅣ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천하에는 그대와 재능을 다툴 자가 없으니 그대는 교만하지 않고, 천하에 그대와 공을 겨눌 자가 없으나 그대는 자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의 공이 큰 것을 알고 있고, 그대의 공적을 가상히 여기고 있다.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 있으니 그대는 임금이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늘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그 중심을 붙잡아야 한다. 근거 없는 말은 듣지도 말고, 의논하지 않은 계챡은 써서는 안 된다. (-35-)
신독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아는 일에서 신중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이지, 단순히 혼자 있는 곳에서 행동을 삼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밤에 홀로 앉아서 자신이 했던 일을 묵묵히 되짚어보면 양심이 드러난다. 어두운 곳에서 스스로를 반추했을 때 부끄러움이 드러난다는 것이지,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히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악은 늘 사람과 함께하는 곳에 있다. (-51-)
용의 덕을 올바르게 , 그 중심을 실행한다. 평상시 말할 때는 믿음을 주고 평상시 행동할 때도 근신해 사특함을 막아 그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 세상에 나서서 옳은 일을 하지만 공을 자랑하기 않으며 덕을 얼리 행하여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60-)
볼 때에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며, 어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이 날 때는 질문할 것을 생각하며, 화가 날 대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 생각한다. (-75-)
장자는 "좋은 것을 보았을 때 그쪽으로 바뀌어갈 수 있으면 천하의 좋은 것을 다 할 수 있고,허물이 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으면 허물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유익은 없다" 라고 말했다. (-80-)
사람들이 훤히 드러나고 크게 밝은 곳인 종묘와 조정의 자리에서는 그 안색을 바르게 하고 그 말을 잘하여 그 뜻이 하고자하는 바를 행하지만, 그 행하는 바가 혹은 사사로움을 따르고 공익을 없애며, 혹은 파당을 지며 위엄을 세우고, 혹은 현인을 죽이고 백성을 해친다. 이런 일들이 소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마음과 지식을 써서 간사하고 음험한 짓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충직하다 여기더라도 스스로는 자신의 간사함을 아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암들은 알지 못하지만 자기 혼자서 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122-)
분노와 원망, 무서움과 두려움, 좋음과 기쁨, 근심과 걱정, 이 네가지는 희로애락이 발현된 것이니 마음의 쓰임이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희로애락을 미워하면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겠다고 하는가? 무릇 화를 내야 하면 화를 내되 그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말아야 하고, 두려우면 두려워하되 지나치게 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좋으면 좋아하되 지나친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근심할 만하면 근심하되 마음이 상할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마음의 본체와 그 쓰임이 바르게 되는 것이다. 기뻐하고 화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경지가 되는 것도 진실로 마음의 올바른 본체가 아니고, 기뻐하고 화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무언가에 붙들려 잡히는 잘못도 마음의 올바른 쓰임이 아니다. 오로지 일이 이르게 되면 그에 맞게 응하고 떠나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름이다. (-133-)
인이란 마음의 덕이니 , 장자는 '마음은 곡식의 씨앗과 같으니 생명성이 곧 인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인' 이라고만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절실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켜 그것을 '사람의 마음' 이라고 했으니, 온갖 변화에 대응하는 이 몸의 주인이라서 잠시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의란 일을 행하는 데 마땅함이라서 '사람의 길' 이라고 했다. 사람이 출입하고 왕래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이라서 잠시라도 버려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5-)
'관'이란 말을 주관한다는 뜻이다. 귀는 청각을 주관하고 눈은 시작을 주관한지만 둘 다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럼으로 바깥 사물에 의해 가리어진다. 마음은 생각을 주관하기에 바깥 사물이 가릴 수 없다. 눈과 귀는 작은 것이 되고 마음이 큰 것은 되는 까닭이다. 눈과 귀가 바깥 사물에 가려질 경우 그것 역시 하나의 사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다른 사물이 이 사물에 접촉하면 끌려잘 수밖에 없다. 마음은 큰 것으로서 생각을 하므로 사물에 가려지지 안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눈과 귀가 마음대로 작용해 종국에는 역시 사물에 끌려가고 만다. 따라서 마음과 이목,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만 큰 것, 마음을 먼저 세워야 하는 까닭이다. (-208-)
새벽의 시간, 날마다 스스로 회복해나갈 때 평단지기가 우리를 돕는다. 욕심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도, 선한 본성은 점차 회복해나갈 수 있다. (-242-)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못지 않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263-)
공부란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자 묻고 배우는 길을 가는 것이다. (-276-)
혼자 있을 때도 경건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어느 한 순간도 , 아무리 다급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지켜 변함이 없어야 한다. 바로 그때 지켜냐 항 자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옥을 다루듯이,마치 가득 찬 물을 흘리지 않고 옮기는 것 같은 마음가짐' 이라야 한다.이것이 바로 학문과 수양을 평생토록 행하는 진정한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다. (-281-)
놀바름과 잘잘못, 마음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다산 정약용 하면 다산학으로 언급되는 저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흠흠신서》 가 있으며, 이 책에서 다루는 《심경밀험心經密驗》가 있다. 강진으로 유배형을 떠났던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많은 저서를 남기게 되는데,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 《심경밀험心經密驗》 를 다시 읽어 볼 수가 있다.
마음은 지식이 아닌 지혜의 영역이다. 안간의 감정을 잘 다루지 않으면, 그 감정이 타인을 향할 수 있다. 소위 나에 대해서, 시선을 드러내었던 것들이 타인을 향할 수 있다. 때에 다라서, 화를 내지 않으면, 나를 보호할 수 없다. 화를 내더라도, 그 선을 넘어섬변, 그 화가 나를 향하게 된다. 그러나 화를 내지 말아야 할 때,화를 낸다면,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생각한다. 분노와 감정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앞에 놓여진 여러가지 감정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즉 길을 걸어갈 때, 어떤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혜로움과 분별이 요구된다. 때로는 억울한 상황, 타인의 어거지에 대해서, 내 마음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즉 타인의 허물을 잘 살펴서, 나의 마음의 틈을 메워야 한다. 즉 타인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다스리는 것은 어려운 인간의 심리를 잘 간파하고 있다. 즉 책 속에 나오는 구절 구절은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으며,선을 넘지 않는 것, 감정을 표출하더라도, 정해놓은 선을 스스로 놈지 않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나의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나의 마음과 마음가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나의 마음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허물을 줄일 수 있고, 나의 마음을 세울 줄 안다. 나르 잘 다스릴 줄 아는 이들이 크게 쓰여질 수 있다.바름과 잘못의 경계를 스스로 확보할 수 있으며, 타인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나의 의지되로 살아가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되고, 사람에 대해서, 올바름을 유지하고, 잘잘못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선을 넘지 않고,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평생 매움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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