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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1 - 순풍과 역풍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평점 :
하대용의 저택을 필두로 그 좌우와 뒤편으로 민가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었는데 모두 하씨들의 집성촌이었다. 하대용과 10촌 내외의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어, 주위에서는 이곳을 '하가촌'이라 불렀다. 하대용 저택뿐만 아니라 하가촌 전체가 떠들썩하며,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왕을 맞기 위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13-)
"뉘시온지?"
"동부욕살 하대곤 장군이 보내서 왔다고 전하게."
초피 장사꾼은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까부터 그의 뒤를 미행하던 삿갓 쓴 사내는 골목 뒤에 몸을 숨긴 채 좀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121-)
이곳 책성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고되고 있을 것이네, 자네 역시 그러한 중요한 임무가 주어져 있음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네."
"바위에 글자를 새기듯 , 마음에 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176-)
대사자 우신은 하대용의 딸인 연화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정작 당사자인 왕자 이련이 연화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하니,아무리 대신들이 강력히 주창한다 해도 자신의 딸 소진이 왕자비로 간택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연나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었다. (-278-)
해평은 인근의 성주들과 달리 국내성에서 하루 더 묵었다. 이튿날 대왕 사유가 동맹축제에서 최종까지 남은 세 명의 젊은 장수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왕은 그 자리에서 세 젊은 장수들에게 갑옷과 환두대도를 상으로 내리고, 평양성을 돕기 위한 원군으로 참전해 주 것을 다시금 명햇던 것이다. (-336-)
소설 『광개토대왕 담덕』 은 371년 (고국원왕 41년 봄)이 첫 시작이다. 16대 임금 고국원왕 (故國原王) 고구려 제16대 왕(?~371).17대 임금 소수림왕 小獸林王(~384)18대 임금 (?~391)그리고, 본격적으로 19대 임금 광개토 대왕 (廣開土大王) 담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농경 사회 고구려에서, 거상이었던 하대용이 등장하고 있으며, 중국은 연나라가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노리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며, 연나라와 백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권력을 침탈하고, 권력을 보존하기 위한 후계자 물색이 소설 속에 관찰되고 있으며, 고구려에도, 간신이 있으면, 충신이 존재한다. 즉 이 소설 속에서, 하대용의 여식 하연화가 등장하고 있는데, 하연화는 광개토대왕과 상당히 엮여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왕실간의 교류, 어느 정도의 근친상관이 느껴졌다.
이 소설은 내 기억 속의 사극 드라마, 『태왕사신기 』 를 연상하게 되는데, 농경사회 특유의 신화적 요소가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소서노 그리고 삼족오가 소설에 나오고 있으며, 연노부, 말갈족에 대해, 작가의 시선으로 현재의 기준으로 1700년 전 과거로 향하고 있다. 즉 이 소설에서 놓칠 수 없었던 것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국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로 표상하는 발갈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고구려의 역사 깊숙히 파고들어갈 수 있다. 남함과 북한으로 분단상태에서, 고구려 역사 사료가 부족한 가운데, 약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기반되어 있으며, 백제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불안한 국가의 형태로 현존하고 있는 고구려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18살 고구려의 왕이 되었던 고국양왕의 아들, 담덕(談德)으로 불리는 광개토대왕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