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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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소와 추억을 결합해 기억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불을 무지막지하게 때도 외풍이 일던 옥탑방에서의 기억으로 성북구굴하는 단어만 들어도 으스스해지고 ,인품이 훌륭하지 않은 상사를 만나 잔뜩 데인 회사가 을지로에 위치한 탓에 중구라는 얘기만 들어도 마음이 아린다. (-38-)

좋아하는 이를 만나 근황을 나누거나, 열정을 지니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일에 집중하거나, 점원에게 살가운 말로 인사를 건네는 일도 그만뒀다. 지쳤거나 부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서워서였다. 관계에는 법이 없었다. 다정한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물어도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윽고 입을 닫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를 다치지 않게 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반년 이상 문을 걸어 잠갔다. (-121-)

세상에는 다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정과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나도 그쪽에 가까이 가는 법을 익혔다. 다만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만큼이나 많다. 컨디션이 괜찮을 때라면 나쁜 사람을 만마나더라도 그 사람만 탓하며 잠깐 어두워진 뒤 금세 밝아지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저씨의 상스러운 욕은 나를 재로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198-)

그러나 서후 역시 지금 우리가 선 땅이 상황과 비슷하다면, 혹은 평안과 고통도 있는 무의 상태가 아니라면 복잡해진다. 상황을 바꿀 육체가 없어 더 큰 고난에 빠질 수 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지금 살고 있고, 상황을 바꿀 여지가 있고, 스스로의 뜻에 따라 움직일 기회가 있다.

죽음을 간절히 원하던 때 나는 번번이 죽음이 오는 시각을 앞당기려 애썼다. 그건 죽음이라는 약속 시간이 오기를 희망하며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리던 어린 날의 나와 비슷했다. (-239-)

현요아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는 삶과 죽음을 말한다. 인간의 죽음 너머에 숨어있는 불행과 행복의 끝자락에서,우리는 번번히 삶을 포기하게끔 하였고고, 죽음이라는 지름길을 찾아갈 때가 있다. 평범한 삶이 아닌 왜곡된 형태의 삶, 왜 살아야 하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를 때, 우리는 어둔 그림자 속의 고양이 마냥 움츠러들게 된다.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서 단절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 죽음을 통해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현요아는 어느 날 경찰관이 집에 찾아오게 된다. 바로 슬픔을 감지한 것 마냥, 불행을 예고한 것처럼 말이다. 저승사자가 아니지만, 경찰은 현존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의 죽음이 저자에게 현시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동생 또한 20대 초반이었고, 자신도 20대 였다. 20대의 삶이 20대의 자살, 죽음을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저자는 누군가가 내 동생의 슬픈 죽음을 대체해주었으면 하는 망설여짐이 있었을 것이다. 즉 내 앞에 놓여진 불행의 이유가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내 앞에 놓여진 불행이라는 장소와 기억이 결합된 아픔에서, 아버지가 만약 동생과 같은 운명에 처해진다면, 본인에게는 슬픔이 아닌, 치유였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다정하지만 때로는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은 건, 나의 불행의 원형을 깔끔하게 털어내고 싶은 심리가 아닐까 싶다. 바로 자신의 삶을 살리는 것, 목을 옥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아버지의 존재가 느껴질 때이다. 트라우마 혹은 고통이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착착함,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것이 저자의 마음 속 심리 속에 내재되어 있었으며, 자기 위로보다는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자유의 부존재가 있어서다. 즉 돈과 권력, 물질적인 풍요도 대체할 수 없는 쟈유의 부존재, 불행의 현존은 나의 생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 책에 대해서, '자살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사리고 사랑하고 』에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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