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양정숙 지음 / 예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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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들어 병실로 옮기니 세 명의 환자가 자리에 있다. 본시 6인용인데 3명은 빠져나간 모양이다. 나는 각 침대에 붙은 이름표를 일별한다. 82세 , 고관절 골절 정 딸그막, 58세 목디스크 나영자. 55세의 신장염 오정애, 62세 척추에 금이 간 나 김일숙이다. 병실은 각기 다른 증세의 환자로 50대에서 80대까지 골고루다. (-11-) 『객석 』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막내에게 선을 보라고 했더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갔지 뭐예요. 나는 화가 머리 꼭대기로 올랐지요. 그래서 소리를 질렀지요. 그럴 바엔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이지. 내 체면은 뭐가 되냐. 절친한 동창이 소개한 것인데, 막내는 볼이 부어 말하더군요. 솔직히 말해,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것이야. 차라리 깨지기를 바랐지. 나는 어이가 없어 대꾸도 못하고 하늘을 보았어요. 잠포록한 하늘은 구름이 두텁게 내려앉아 있더라고요. 내 마음처럼. (-64-) 『死者 와의 對話 』

보통 사람들이 나를 대하면 고등학교 정도는 나왔겠지 생각하는 것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런 척 지내온 것이 죄라면 죄지. 나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내가 서툴지만 토막글이라도 쓰고, 등단이랍시고 잡지에서 주는 신인상도 받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남들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것이지. 설마 저 사람이 초등학력 가지고 문학활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세월이 갈수록 양심이 가책을 맏는거야. 내 학력을 밝히지 않은 것이. (-92-) 『비밀 』

"환자분은 망막색소변성증입니다.일명 알피라고도 하지요. 현재 물체가 보이기는 하지만 대롱을 끼고 보는 것처럼 시야기 좁아요. 지금까지 진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126-) 『 눈먼자의 꿈 』

지지리도 궁상스럽고 가난했던 남산동 생활이 다시 떠오랐다. 우리는 왜 그렇게 가난해야만 했을까. 우리느 왜 이렇게 낳아준 부모와 헤어져야만 했을까. 구름 저쪽에서 운명이란 놈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156-) 『돌아오는 길 』

음식들을 입에 넣으니 목이 메어왔다.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남산동 생활이 다시 생각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식사를 하며 교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초면이었지만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이것은 동포애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182-)

『돌아오는 길 』

소설 객석은 우리의 삶의 가난과 빈곤, 생로병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은 베이비붐 세대를 지나온 이들의 내밀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해서,배움을 중단하고,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추례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던 지난 날,그 지난한 날들을 견뎌낸 이들의 삶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배우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살기 편한 세상에서,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 억울하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골병이 들게 되면, 한곳으로 모여들게 된다. 단편 소설 『객석 』에 등장하는 네사람, 82세 정 딸그막, 58세 나영자. 55세 오정애, 62세 김일숙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병은 다르지만,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병이었다. 골절이나 고관절, 뼈에 이사이 생겨서 생기는 병이며, 목디스트 환자도 마찬가지다. 가난을 고생과 맞바꿔서 얻어낸 병들은 서글픔과 아픔으로 이어지며,우리의 삶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백내장과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게 되고, 수술로 인해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게 된다. 『눈먼자의 꿈 』 의 주인공의 모습이 바로 나의 외할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짓게 된다. 우리의 지난한 삶, 빈곤한 삶과 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소설 속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은 우리가 마주하는 노화의 본모습이며, 우리의 가족 이야기, 친지 이야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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