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에도 깔깔 - 모든 것이 눈부셨던 그때, 거기, 우리들의 이야기
김송은 지음 / 꽃피는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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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들은 잠재적 위협이어서 익숙지 않은 일들에는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한 발씩 물러서다 보니 적응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나중에는 절벽 끝까지 몰렸다.

남학생들이 사라진 교실에는 62명이나 되는 여중생들로 가득 찼다. 분단 사이의 공간은 한 사람 겨우 지날 정도로 비좁았다. 급히 화장실에 가려도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 같은 곳을 부딪혀, 덜렁거리던 나는 1년 내내 멍이 떠나질 않았다. (-15-)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집안 형편도 넉넉한 것이 하필 키 크고, 날씬하고, 얼굴까지 예쁘다면? 게임은 끝났다. 엄친딸이라 불리는 재수떼기들이다. 새우젓이 바로 그 왕재수였다. 민선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 가졌다. 새우젓이라는 별명은 민선이 갖지 못했던 그 한가지 때문에 생겨났다. (-58-)

어릴 적 얘기를 할 때면 장미는 매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 라는 전제를 깔았다. 전학 오기 전, 장미의 별명은 소피 마르소. 아이들이 뽑은 그 학교의 3대 미녀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2학년 피비 케이츠와 3학년 브룩실즈 .장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장미의 남친 자리를 걸고 자기들끼리 결투를 벌이는 남자애들 때문에 늘 어이가 없으셨다고..(-93-)

대상은 성룡, 장국영, 전영록처럼 먼 곳에서 빛나는 오빠들이나, 국영수사과한도음미체 중하나를 담당하는 지척의 선생님들이었다. (-103-)

중 2첫날. 새 담임이 앞문으로 들어왔다. 문틈으로 찐한 향수 냄새가 사람보다 먼저 입장했다. 도합 8년을 학교에 다니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선생님이었다.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이미지란 뻔했다. 첫째는 단정함, 줄째는 빈곤함, 셋째는 앞의 두가지가 만나 필연적으로 탄생한 구림,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등장했다. 화려하고, 럭셔리하고,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모두 얼이 빠졌다. 담임은 브로콜리 같은 펌을 말지도 않았고, 무릎 아패로 어정쩡하게 내려옿는 고등색 스커트도 입지 않았으며, 로션만 바른 얼굴에 두꺼운 불테 안겨을 걸친 것도 아니었다. 단발머리는 좌우 길이가 달라 해괴했고, 눈과 뺨과 입술에는 소신이 뚜렷한 컬러가 제각기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었다. 그녀는 올해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담임을 맡은 것도 처음이기에 ,우리가 자신의 첫 제자라며 ,서서히 감격의 게이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115-)

친구이 집에 우르르 모여 각자 구입한 과산화수소를 대야에 모으고 돌아가면서 머리를 감아 집단적으로 탈색을 시도하기도 하고, 색깔이 진한 립밤을 사서 어떻게든 쥐 잡아먹은 입술을 연출하고 싶어 용을 썼다. 민주가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구루프를 말고 있어서,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기함할 듯 놀라기도 했다. (-160-)

에세이집 <가랑잎에도 깔깔>은 1985년부터 시작된다. 중1 입학후 처음 마주하게 된 62명의 또래들은 뚱뚱한 지방덩어리 돼지 여학생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작은 교실 안에서 지내야 했던 지난 날, 그리고 푸세식 일색인 화장실이 곳곳에 침투했다. 남녀 성에 대한 인식이 무지한 과정에서 중학생이 되자 마자 패션에 눈을 뜨기에 이르렀다. 영화속 3대 미녀, 피비게이츠,소피마르소, 브록실즈를 자신과 비교하였고, 스스로 돋보이게 했다. 선생님들은 쥐파먹은 듯한 모습을 한 중학생 여학생을 보면서 기함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지금의 우리 정서와 동떨어진 그 당시의 여중생 소녀의 모습이었다.

순진하지만, 되바라지고, 남폭하면서, 다정했던 그 당시, 나약하지만 용감무쌍하였던 무대뽀 정신이 잇었다. 홍콩 영화를 좋아하였으며,유덕화 장국영을 짝사랑하였던 그 당시, 영화 속 여주인공을 따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땡땡이를 밥먹듯하였으며, 주간 수업 뿐만 아니라 야간 수업이 있었던 그 당시 우리의 일상들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같은 반 동창회의 모습이 디테일한 스토리와 함께 ,책 속에 기록되고 있었다. 이름보다 별명으로 불리었고, 컴플렉스, 왕재수를 극혐햇던 그 시절,우리는 순수하였지만, 무지하였다.그리고 무지하였기 때문에 때로는 무모하였고, 거침과 두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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