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손수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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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묵하던 슈짱은 도대체 어디 갔는지 요즘의 슈짱은 종알종알 말이 많다. 자다가도 뜬금없이 내가 느껴지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슬그머니 눈을 맞추고는 무언의 입을 벌린다. 투명한 눈알은 사실 끝도 없는 우주이고 온몸을 덮고 있는 새하얀 털은 알고 보면 그곳의 안테나일까. 고양이가 종종 말없이 벙긋거린다는 것을 슈짱 덕분에 알았다. 그 자체가 어어라는 것도,인간인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아직도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산더미다. (-24-)

나는 말랐다. 뼈 자체가 작아서 몸집이 조그맣다. 마른 만큼 가슴도 작다, 라기 보단 없다.그래서 예상하듯 어렸을 대부터 내 별명 중 하나는 껌딱지였다. 종종 바닥에 붙은 내 가슴을 떼어 내는 벌로 이어졌다. 복도든 길가든 어디에든 처량하게 붙어있는 껌딱지가 너무 싫었는데 그 분노는 껌을 향했다가 껌을 밷은 새끼에게 향했다가 결국엔 나에게로 돌아왔다. 분논느 원인이 제거되면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땐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제 모습을 바꾼다.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92-)

나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짧다. 새끼손가락만 그렇다. 어느 정도 빫으냐면 5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길이여서 네 번째 손가락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빫은 손가락이 어렸을 적엔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손가락이 짧은 만큼 힘도 없어서 주먹을 꼭 쥐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아쟁을 전공했던 때에는 새낏곤가락이 활대에 영 감아지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났다. 새끼손가락이 엄지나 검지, 약지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활대를 휘감을 때 깨달았다. (-120-)

'내가 여기에 있네' 하는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숨을 쉴 때면 폐가 부풀고, 숨이 지나가면 콧구멍에 난 길이 차갑다가 따뜻해진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으면 정수리 부근에서 얕은 심장이 뛰고, 누워서 손끝에 정신을 집중하면 몸 안에 흐르는 피가 핏줄을 작그하듯 찌릿한 느낌이 든다. 그럴때면 문득 내가 태어나던 순간의 감각마저 궁금해지는데 그 궁금증은 더 끝까지 뻗치며 죽음의 순간까지 다다른다. 명상은 생각을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훈련인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 자는 어쩔 수 없이생각의 꼬리를 문다. (-222-)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생긴 바람이 있다.'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그 바람은 가부장제의 맥락 안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착함' 과는 분명 다르다.'순종'적인 게 아니고, '고분' 한 것도 아니고,보편의 윤리가 보장된다는 전제하의 '선량함'이다. 언뜻 보면'착하고 선한' 혹은 '상냥한' 마음이란 '선량함'에서 파생된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단어처럼 느껴진다. (-245-)

어쨋든 손씨 집안에서 내가 태어나자 엄마와 아빠는 머리를 맞대고 '현'자 앞에 붙을 이름을 고민했다고 했다. 손수현이 낫겠어, 손미현이 낫겠어. 수많은 의견과 번복 끝에 나는 결국 손수현이 되었다. 빼어날 수 秀 에 어질 현 賢,빼어나게 착하다, 뭐 대충 그런 뜻이 되겠다. 어렸을 적엔 이 이름을 매우 싫어했다.의식의 흐름으로 따라붙은 별명 때문이었다.예상했는가. 바로 손수건이다. (-257-)

1988년 2월 29일생, 손수현의 양력 생일은 사년에 한 번 돌아온다. 배우이자 감독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손수현의 에세이집에는 평번한 여성의 일상이 느껴지고 있었다. 슈짱, 앙꼬, 뚱이, 세마리의 고양이와 동거동락하며 지내는 저자에게 쓸데없는 짓이란 무가치한 것들, 별명과 콤플렉스이다. 이 두가지는 나와 동떨어진 것, 나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배우 손수현에게 , 컴플렉스가 될 수 있는 작은 체구, 껌딱지, 손수건이라 부르는 자신의 별명, 짧은 새끼 손가락은 저자에게 열등감이면서, 컴플렉스였고, 쓸데 없는 짓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쓸데없는 것들이 모여서 나 자신의 정체성, 가치관이 될 수 있다. 어릴 적 누군가 나를 억할 때, 그 별명이 나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치한 것보다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별명은 그래서 소중하기에 내 삶의 한 귀퉁에 그대로 놓고 있었다.

여기서는 저자가 바라는 소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다.누구나 이해하고,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선량함을 실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나를 내려놓고, 성실하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고, 나를 잠시 내려놓는 사람, 나와 타인의 여러가지 면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거대한 쓰나미의 물결 속에서 잔잔하게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작은 물결 파도처럼 살아가는 , 무심하지만, 솔직함과 아름다움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 , 씩씩함과 다정함이 느껴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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