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평전 :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이호준 지음 / 꽃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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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는 KAIST 에 입학한 뒤 비로소 서울대에서 미처 하지 못한 공부를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 "서울대에서 4년동안 배운 공부는 과학원에 입학해서 한 달 동안 배운 것보다 훨씬 적었다" 라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서울대는 시설이 낙후된 편이었는데, kaist 는 미국에서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거의 미국 대학 수준의 좋은 환경이었다. (-44-)

일반적으로는 메디슨이 투자를 많이 하는 바람에 부실이 생겨서 부도가 났다고 생각하는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투자한 돈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문제는 회사를 키워가다 보니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성장 요청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성장중심주의 때문에 국내와 해외에 영업부실이 생겨났고 그것이 부도의 근원이었다. 국내는 물건을 팖녀서 초음파만으로 매출이 안 나와서 다른 아이템을 같이 하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금융회사인 메디캐피탈이었다. 이 회사의 부실 금액이 많아지면서 부도가 난 뒤 조서와 형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20-)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이기에 국민의 공감을 이끌 미래 비전의 브랜드가 필요하다."

"가상과 현실의 선순환, 다시 말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들을 걷어내야 한다."

이민화가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밝히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남긴 말들이다. 흔히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328-)

벤처 1세대 이민화는 한국 최초의 베너 기업 '메디슨'창업자이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여, 조용히 공부만 하였던 얌전한 아이였다. 하지만 서울대 입학후 KIST 연구원에서 공부를 하면서,자신의 진로를 하나하나 스스로 정하게 된다. ㅁ모와 공부로 만들어진 세상을 보는 안목, 벤처라는 용어가 생소하였던 1990년대 이전, 그가 만든 벤처 기업은 대한민국 사회의 큰 변혁을 일으키게 되었고, 전자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을에 앞지를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즉 그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며, 제4차 산업혁명에서 강조하는 혁신과 도전, 실패의 역사, 스타트업의 개념에 대해 정립하게 된다.제3차 산업혁명 시대에 벤처 신화나 지금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이나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된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였던 이민화는 초음파 의료기기 전문 벤처 기업 '메디슨' 을 창업한 이후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확보하게 된다. 벤처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 앞장 서 왔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벤처 규제 법안을 개정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 나갔다. 이후 '메디슨'이 경영 어려움으로 부도가 나고, 자신의 재산이 전부 사라진 이후에도, 이민화 는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특허만으로 재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인으로서 돈에 대한 물욕이 크지 않았고, 항상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와 한계를 절감하였던 그는 벤처 협회 회장이 되어서 벤처 기업이 살 수 있는 IT 인프라를 하나하나 계획한 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아직 미완성이지반 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의 미래 디지털 병원, 스마트 병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후대가 할 일이 무엇인지,그가 살아생전 보여주었던 인프라 하나하나를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그가 만들어낸 인생스토리가 , 앞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귀감이 되고 있다.여기에 덧붙여, 그의 자서전 끝나지 얺은 도전 에서 그의 삶과 그가 만들어낸 미래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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