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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떠난 인어
지병림 지음 / 사막과별빛 / 2022년 5월
평점 :
캠퍼스엔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사막처럼 황량하게 말라가던 내 가슴도 물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살아지던 2003년 만우절, 거짓말처럼 장국영의 자살소식이 들려왔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의혹이 들끓었다. 몇 백억에 달하는 그의 전 재산이 그의 동성 연인에게 고스란히 상속됐다. (-13-)
코펜하겐에서 인어공주를 만난 날도 억수 같은 피가 퍼부었다. 우산을 깜빡했으므로 나는 신문을 펼쳐 겨우겨우 비를 피하며 걸었다. 그러다 혜썽처럼 등장한 우산 장수를 마나 10유로나 주고 일회용 비닐우산을 샀다. (-49-)
승무원 학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그녀의 프로필은 꽤나 화려했다. 박사 학위를 보유한 귀하신 몸으로 수년간 대학강단에 선 이력이 '고딕으로' 진하게 강조외어 있었다. 언제적 사실인지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바 없으나 8년이 족히 넘은 미국 새활로 글로벌 매너는 타고났다고 봐도 좋을 이력이었다. (-127-)
손글씨로 적어 넣은 종이를 구겨버리고, 키보드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손놀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날렵하게 움직였다. 또각또각 주판알 튕기듯 키보드가 경쾌하게 율동했다. 따분하고 지루했던 내 인생에도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입력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는다. 짜릿한 전율이 온몸믕 타고 흘러내린다. (-181-)
여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 울음을 더듬는 모양인지 꽃무늬 이불이 간간히 들썩거렸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 만지작거리던 14k 반지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약속이 새겨진 반지는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채 여자의 불행을 발조했다. 여자의 손등에서 시작된 링거 줄이 전화선처럼 베베 꼬여있다. (-214-)
그녀가 집에 다녀온 것은 4개월 만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올 때마다 한국산 양말 두 켤레를 아파트 경비에게 선물했다. 한국 양말이 탄력이 있다며 경비는 무척 좋아했다. 경비는 감시 카메라를 피해 구석에 몸을 말고 걸핏하면 늘어지게 도둑잠을 잤다. 이를 발각한 경비 업체는 거침없이 그를 해고했다. (-272-)
소설 『사막으로 떠난 인어 』 에서는 국내 승무원 출신 지병림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열편의 소설에 담아놓고 있다. 해외에서 살아온 지난날, 이 소설의 첫머리에 장국영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사랑하고, 그이 연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팬들에겐 상당한 충격이 되었다. 1956년생, 홍콩 영화의 전성기의 주역이었던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재산 상속과 각종 루머들과 무관하게 ,저자처럼 한 사람을 좋아하는 팬에겐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인생 전환점은 그렇게 바뀌게 되었고, 이 소설에서 ,사막이란, 저자가 승무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아랍을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이 소설에는 승무원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소개되고 있다. 승무원과 작가로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 나간다. 채용과정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지게 되는데, 그 안에서 고스펙 지원자에 대한 이야기가 단편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승무원의 세계를 작가의 시선으로 다양한 무지개빛 스토리를 느끼게 되었다. 사랑과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나의 시선과 관점이 아닌 타인의 시선과 관점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그래서, 해외에 대한 이야기가 정겹게 소개되어 있으며,해외에서 구한 해외 제품들, 그 제품들을 우리에겐 낯설지만 ,저자에겐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승무원으로서 몸으로 보여지는 메너와 배려, 긍정,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비교해 볼 수 있으며, 열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작가의 개성을 잘 드러나고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에세이 느낌이 드는 열편의 단편 소설 , 열가지 스토리텔링이 책에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