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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평점 :
관계와 진실, 얼핏 보기에 서로 다른 범주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이 두 개념은 사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내가 근의 공식을 아는 것, 도둑질이 옳지 않음을 안은 것, 병민이의 성격을 아는 것은 각각 다른 종류의 앎이다. 내가 소문을 통해 병민이에 대해 접하게 되는 진실과 병민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그로부터 직접 듣는 진실 또한 다르다. 어떤 진실에는 이해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이해는 관계의 거름이 밑바탕에 있을 때 가능해진다. 진실에서 관계의 노력을 억지로 떼어놓을 때 진실은 무책임한 정보의 채굴에 지나지 않게 된다. (-5-)
반면에 아이콘택트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그 대상이 불확실하다. 상대방의 눈이 싫은 게 아니라 눈을 쳐다보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인지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불안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 아이콘택트가 종료된 후에도 아이콘택트로 형성된 관계는 취소되지 않는다. 관계는 다른 관계로 덮을 수 있을지언정 파괴할 수는 없다. (-34-)
우리는 바야흐로 탈의 시대에 살고 있다. 탈의 시대는 곧 관음의 시대를 뜻한다. 인격체 자체가 데이터화되어서 디지털 포럼에 전시되는 시대에는 모두가 모두를 감시한다. 그리고 모두가 이 상호감시체제에 수긍하고, 오히려 환호한다. 내 정체성의 자유는 허납하더라도 나를 제외한 모두를 관중화, 객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체화는 길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SNS 에 게시하는 사진과 글을 통해 친구들의 시선을 조련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어떤 탈을 쓰는지에 따라 그들이 나르 사회적으로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보게 할 수도,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게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나에게 있어 화면 속에 진열된 사물이 된다. (-80-)
조명 중독 사회에서 개인의 세력은 가히 미니 시스템이라 칭할만하다. 타인이 나를 보도록 강제하는 것은 어렵지만 , 내가 나와 같은 패션의 무리를 비춰줌으로써 나에 대한 시선을 유도하는 것이 쉽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개인은 부정성을 전제하는 우리의 이해를 기피해 같은 뜯어보기를공유하는 무리의 빛 속으로 흡수되고자 한다. 더 이상 하나의 무대와 하나의 조명만 존재하는 시스템은 없기 때문에, 개인의 특유한 뜯어보기도 충분히 국소적 문화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 (-146-)
전문가의 시선은 진실스러운 거짓을 퇴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로부터 비전문가에게 유통되는 전문가의 시선은 팩트와 논리로 무장해 잘못된 직감을 훈계할 수 있다. 이는 곧 시야의 조정, 혹은 시선의 교정이락도 할 수 있다. 반명에 그럴싸함은 전문가에게 훈계받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전문성을 비웃는다. 나아가 그럴싸함은 개개인이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를 원한다. 시야가 넓을수록 개인은 자발적으로 특정 문화부족에 스스로를 예속시킨다. 어차피 그럴싸한 이야기가 즐비하기 때문에 각자가 좋아하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믿어도 괜찮다는 심리가 발동한다. 그럴싸함은 진실을 기호의 문제로 포장함으로써 전문가의 교정을 피한다. (-177-)
성과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인은 즉각적으로 소비하고 값어치와 등수를 매길 수 있는 첫 번째 종류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디지털 패션과 탈의 조명 사회에서 '아름다움'이란 개인적인 기호를 타인에게 투영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의 마음대로 정한 프레인 안에 시야의 사람들을 우겨 넣는 행위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현대인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타인을 볼 수 있기 때문에,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자유의 강박에 구속된다.그 강박은 '너'없는 '나'만으로 꽉꽉 채워진 숨막히는 구동이와도 같다. (-210-)
우리 사회는 시선과잉사회로 살아간다 .내 주변에 수많은 시선들이 존재하고 있다.CCTV, 카메라, 자동차, 그리고, 유투브, SNS, 여기에 GPS까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정치인, 연예인들은 이런 시선과잉사회가 부담스럽다. 나를 공격하는 우너인을 시선과잉사회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다. 즉 우리사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선과잉사회가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이유는 이런 사회가 자본을 형성하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선이 자본화됨으로서, 우리느 그로 인해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족쇄 아닌 족쇄를 스스로 채우고 있었다.
지은이 정인규는 1996년생이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 유망주이며,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제목을 보면, 사회학자가 쓴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 책은 철학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단면들을 철학으로 엮어나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선들이 긍정적인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우리 앞에 놓여진 시선과잉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시선 과잉은 서로 불편한 관계,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며, 갈등과 반목, 다툼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시선과잉사회가 관계 단절과 왜곡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서다. 우리는 SNS 상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타인들 사이에서, 서로 비교하고, 나의 관점에서 그들을 평가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시선과잉사회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여러단면들은 모여짐으로서, 관음과 노출, 관종을 부추기고 있었다.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타인에게 엄격한 반면, 나에겐 지극히 관대하다. 이러한 변화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한 권의 책에서 , 지은이는 철학과 사회를 연계함으로서,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 텍스트화된 또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