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그물 시학시인선 76
나삼진 지음 / 시학(시와시학)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학교 가는 길

내 고향 유년 시절

학교 가는 길이 눈에 어린다.

소학산 이서 오라 우리는 부르고

다람산 힘내라 응원하는데

소풍 즐기다 때로는 마라톤 경기

그렇게 매일 7km 걸으며 달리며

단련한 무쇠 다리

철 따라 온 산은 새옷으로 갈아 입고

동백이 지나가면 매화가 오고

개나리 지면 이어 진달래

살구꽃 벚꽃이 순서대로 방긋방긋

봄마다 만나는 손님은 순서대로 온단다.

드문드문 화물자동차 먼저 흩날리는

함께 걷는 길 신작로 新作路

때로 이야기 보자기 풀어 우리는 하늘을 열고

때로 다투며 너의 하늘을 닫았다.

내 고향 유년 시절

하교 가는 길

친구들과 매일 소풍 가던 길

이제 먼 풍경으로 남았다. (-17-)

초동 시절

작은 형 외가로 중학교 가며

방학마다 소 먹이는 일은 내 차지

어느 시인은 중학교 못 가고 소꼴을 베는 게 싫어

손등을 낫으로 찍어 버리고 싶었다 했는데

방학 때만 소를 먹였으니 이도 고마운 일

산과 들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소와 재미가 서로 경쟁을 했더나

재미가 우리의 마음을 빼앗자

소는 우리를 떠났다. 이 절망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 호야 불 켜고

잃은 양 찾는 목자 되어 소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그날 밤 나를 꾸중하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를 닮았는가

사춘기 맞은 시은이 중학교 3학년 대

친구 황별이 두들겨 주고 왔던 저녁

말없이 비싼 수원왕갈비 사 먹이고 돌아왔다. (-25-)

그해 여름

전쟁이 끝나고 25년

공중의 새와 강과 바다, 물고기만 자유롭던 시절

서해에서 동해까지

그해 여름, 민통선 철조망 설치 작전

전쟁을 대비하는가, 긴장을 만드는가

보병이 만든 민둥산에 , 공병은 철조망을 설치한다.

미래의 밭 갈 청춘들의 땀방울이 피로 맺힌다.

고된 하루 일과, 기진맥진한 저녁

이제 모든 것 두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온 산에 흩어진 철조망, 또 쇠말뚝들

이제 백성들의 땀이고 피다 싶어

선임하사 눈치 보며 죽을 힘으로 거두어 오니

아, 이것은 거대한 절망

모든 것이 끝났는데, 작전이 모두 끝났는데

온 계곡에 가득한 철조망들, 쇠말뚝들

대장의 지휘로 개울 숲에 숨겼다.

땀방울도 분노도 아련한 추억, 그 철조망

지금도 눈비 맞으며 녹이 슬고 있을까 (-53-)

다름

숟가락을 집을 때, 글을 배울 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손등 맞아 가며

-바른 손으로 잡아라

오른손이 바른손이면 왼손은 틀린 손이 되는가

사람들은 다른 것을 왜 틀리다고 하는가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같이

온 세상 사람들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

다름은 신이 주신 선물, 또 축복

얼굴이 다르듯이 생각도 다르고

관심이 다르듯이 삶의 방식도 다르다.

서로 다름은

나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 배우며 살라는 것

다름이 만나 퍼즐을 완성하듯 완전해지고

우리는 성숙의 계단을 오른다. (-75-)

오 캡틴, 마이 캡틴

-로빈 윌리엄스를 애도함

누구에게나 마음에 담는 영웅이 있는 법

로빈 우리리엄스는 내 영웅이었다.

로빈이 좋아, 영화가 좋아

그의 영화를 읽는 것은 인생의 작은 행복이었다.

'굿 윌 헌팅', 어릴 때 상처 평생 안고 사는 천재 청년에게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션교수는

윌에게 날개를 달아 신세계를 열어 준다.

'죽은 시인의 사회',통제된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학생들의 마음을 알고 우리 교육도 미래도 연다

새롭게 숨 쉬던 학생들의 용기와 외침

"오 캡틴, 마이 캡틴"

'미세스 다웃 파이어', 무능한 남편은 용서받을 수 없는가

좋은 아버지 대니얼의 마법은 할머니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벌이는 유쾌한 소동과 웃음들

깨어지는 가정에 희망을 선물한다.

반전 反戰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굿모인 베트남'에서

만화에 영혼을 불어 넣은 '알라딘'까지

언제나 유쾌한 웃음과 묵직한 감동을 선물한다.

그라 우리를 찾을 때 실망하는 법이 없다

온 누리 사람들 웃기고

울리던 로빈, 영원한 배우

스스로는 웃을 수도 없었던가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지도 못했던가

사람들 웃기느라 멍든 가슴

로빈의 우울증은 세상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가 없는 세상은 우울하다. (-81-)

만사형통

푸른 기와집의 형님, 모든 일은 형으로 통한다고

사람들은 만사형통 이름표를 붙였다.

붉고 아름다운 꽃은 열흘을 피지 못하고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하는 데

형님은 영어 囹圄의 몸

개가 벼다귀를 가지고 싸우듯이

누구에게나 있는 소유에의 의지, 권력에의 의지

큰 모자 여럿 쓰면 누구나 왕이 되는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법

내가 잡으면 누구나 잡혀야 하고

내가 놓으면 누구나 놓여야 하고

나의 뜻으로 의인도 만든다

그들은 우리들의 집에도 깊게 드리웠거니

세상 사람들 버리는 것을

하늘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제 즐긴다. (-120-)

소통

소통이 중요하다, 온 세상이 난리다

영남과 호남이 겨우 소통되는다 싶은데

이제 어른들과 젋은이들,지도자와 백성들이

보수와 진보가, 남과 북이 한 가위 고향 가는 길

198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되었다.

도로는 막혀도 시간 지나면 풀리지만

불통은 역사에 혈전 血栓을 만든다.

소통은 마음을 나누는 것, 서로를 배우는 것

세상 사람들은 막걸리 비우며 마음도 비우지만

불통은 하늘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하다

근래에 예루살렘에서 된 일은

오뉴월 서리도 만드는 시기와 질투가 시작

바른 생각을 나누어야 소통이 되는데

혼자 마음으로 모든 일을 다 한다

소통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121-)

십 분간 ,시집 <생각의 그물>에 남겨진 의미를 꼽씹어 보게 되었다. 나의 생각 너머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낚으려면 , 그물의 필요하다.거대한 망망대해에서, 바다를 저어가는 고기는 그렇게 그물에 걸리게 된다. 생각을 낚고, 그 생각이 누군가의 인생에 반영될 수 있다면, 내가 시인이라도 자신이 쓴 시 한편에 대한 부듯함과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인은 고인이 된 배우, 한 사람을 조망하고 있었다. 2014년 8월 11일 갑자기 떠난 그 사람, 로빈윌리암스였다. 때로는 유쾌하였고, 때로는 엉뚱하였으며, 때로는 진지한 모습으로 배우는 영화 관객에게 다가간 그의 영화와 그의 배역. 남자로서, 도달할 수 없는 그 상상 너머의 세계관을 채워 나가려고,자신의 배역에 로빈윌리암스 자신을 일치시켰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였던 그와, 미세스 다웃 파이어에서 보여주었던 같은 사람이 서로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보여준 연기의 깊은 맛에 있었으며, 그를 오마주하였던 시인 나삼진은 자신의 시선으로 그의 인생을 시로서 스토리화하곤 한다. 즉, 시집에 누군가의 인생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현재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유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만인에게 보편적인닌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고,그것이 문화가 되고, 철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은 한 사람의 지혜와 엮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도안 나의 생각을 새롭게 정립해 나갈 수 있었다. 롭빈윌리암스와 비슷한 , 한국의 배우 간수연이 얼마전 세사을 떠났다. 그를 오마주할 수 있는 시 ,한가지를 생각하게 된다.소통과 다름에 대해서, 다양성과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 우리가 추구하였던 삶에 대한 기준을 다시 정립해 나가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으며,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깊은 영향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몸과 마음으로 각인되었다. 시인 나삼진이 오마주 하였던 배우 로빈윌리암스, 나는 어떤 사람을 존경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오마주해야 할 것인가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되었다.나의 인생에 누군가 개입되고, 각인될 수 있다는 것,그 하나만으로도 , 100년 남짓 짧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강렬한 의미가 되었으며, 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성찰을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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