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눈치 없는 언어들 - 알쏭달쏭하다가 기분이 묘해지고 급기야 이불킥을 날리게 되는 말
안현진 지음 / 월요일의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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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이 세다' 는 게으른 문장이다.

정리하다면 누군가를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복잡한 맥락을 간편하게 덮어 버리는 대단히 게으른 언어 사용이다. 누군가가 '고집이 세다' 고 느껴지는 것은 다음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일 확률이 매우 높다.

1) 나의 설득력이 부족할 경우이거나, 2) 상대방의 이해력이 부족한데 그것을 양해하고 더 노력할 의지가 없는 즉 불친절한 경우, 또는 3) 상대방과 서로 악감정이 있거나 내가 너무 권위적이어서 상대방이 내 말에 귀 기울고 싶지 않은데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 (-30-)

카르투시오회는 1084년 성 브루노가 고독과 침묵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수도회라고 한다. 수도회 안에서는 독방에서 기거하며 말을 하지 않는 외적 치묵과 내면의 잡념을 끊어내는 내적 침묵을 수행하며, 허가 없이는 바깥 세계와 전화도 편지도 안 되고 가족과도 1년에 단이틀만 만날 수 있다.이런 '위대한 침묵'의 길을 걷는 수도자가 세계적으로 약 370먕 정도가 있는데, 전 세계 11개국에 분원이 있고 그중 한 곳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흥미진진하게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수도사님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되었다.

"가난은 우리를 비우고 겸손하고 초연케 한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실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느 우리 스스로도 가난한 이들이 괴어야 한다." (-117-)

반면 여자들 같은 경우는 딱 하나로 정해진 '정장' 양식이 없다. 블라우스와 치마, 자켓 등이 남자의 수트와는 다르게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옷차림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종종 봤다. 마치 내가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갈 대 (비록 회사에 출근할 때 고민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아웃핏이 적당한지 너무 촌스럽지는 않은지 은근히 고민하게 되는 것처럼. (-169-)

흐름대로 가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자 제대로 흐름대로 가기 위해서는 명징한 의식을 유지하고 때로는 급류를 거슬러야 하며,때로는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기도 한다. 진정한 자연의 흐름은 그런 것이다. (-179-)

인간관게에서 쓰이는 '손절'이라는 말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손절'이라는 말이 쓰일 때는 '손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인간관계에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을 때 '손절한다'고 하는 것이다. 분명히 관계에서 손해가 생길 때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관계 속에서 나는 손해만 봤을까? 그리고 나만 손해를 봤을까? 관계란 상호적인 것인데, 내가 이익을 보았던 것은 정말 단 하나도 없을까? 나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친 적은 없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더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약간은 손해를 본 것 같을 때 비로소 공평해지지 않을까? (-199-)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우아한 것이란,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에서 어떤 과일을 딸지 고심하여 '선택' 한 결과값이다. 즉 우아한 삶을 만드는 것은 나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의미 아닐까. (-244-)

한국 말은 영어로 번역되기 힘든 복잡한 감정과 느낌이 내포되고 있으며, 묘한 뉘앙스가 내포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평생 한국어를 배우면서도 잘못도니 언어를 쓸 때가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징에서 때문에, 누군가 부심코 던진 말에 대해서, 맥락을 모를 때,맥락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 나 스스로 멍청해진 기분이 들게 되고, 자다가 이불킥을 날리는 참극을 빚을 수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러운 가운데, 어떤 언어를 써야 하며, 자기중심적인 언어와 말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의 실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책에서는 내안의 숨겨진 언어와 언어적 표현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참 눈치 없는 언어'는 나 스스로 헛똑똑이가 되거나, 나의 어리석음을 노출시키는 언어들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어떤 조건에 대해서,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 쓰는 언어가 도리어 나 스스로 무례하고, 오만한 이미지르 만들 수 있고, 나의 이미지에 대해서, 자충수를 만들 때가 있다. 스스로 살아가면서 행동도 조심해야하지만, 말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눈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언어와 말, 행동에 고스란히 내포되고 있다. 누간가 말을 할 때, 그 말이 묘하게 기분 나쁠 때가 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해당될 수 있다. 나는 어떤 형태의 눈치 없는 언어를 쓰고 있는지 스스로 간파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다가갈 때, 상황에 따라서, 말을 달리할 수 있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거나 조롱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느낌을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떤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때, 나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나를 스스로 성찰하게 되고, 적절한 언어와 표현을 즐겨 쓸 수 있다. 좋은 선택과 좋은 결정을 할 때, 명확하고, 정확한 말과 언어는 나를 돋보이게 하고, 상대방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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