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일본 TV도쿄 2021년 방영 12부작 드라마
제인 수 지음, 이은정 옮김 /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평점 :
우리 집은 새해 첫날 반드시 성묘를 간다. 그렇게 정해져 있다.
'우리 집' 이라고 표현했지만 일흔일곱이 된 아버지와 마흔두살의 외동딸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새해 첫날에 성묘를 가는 게 우리 집 연례 행사가 된 것은 십팔년 전 어머니가 저승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나서부터다. (-7-)
우리집은 '지성결여' 만이 아니라 칠칠치 못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재산을 다 말아잡수신 아버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결혼하지 않는 딸만 봐도 잘 알수 있듯 절에 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토바를 받는 절과 오토바를 꽂는 절이 다르고 심지어 종파도 다르다. (-74-)
트럼프가 승리를 선언한 다음 말, 나는 일하는 곳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어 날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을 시작하고 난 후 몇 년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109-)
대십이지장유두.
처음 들어보는 신체 부위였다. 담즙을 내는 담관과 췌장과 십이지장의 접점에 있는 밸브 같은 것으로 암세포가 거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206-)
이상한 것은 짜증이 불같이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다.'부모와 인연 끊기' 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몇 번이나 검색해 봤는지 모른다. 물건을 계속 버리는 것은 회복할 조짐이 없는 병자를 간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혼이 빠지는 작업이다. 계속 깆아하고 있어야만 저녁을 무사히 넘길수 있다. (-232-)
아버지와 내가 닮은 부분을 꼽으라면 먼저 얼굴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누가 어떻게 봐도 붕어빵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난 날 아버지는 막 산 카메라를 가지고 산부인과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찰칵찰칵 몇 장이나 찍었다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필름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뭐다 해서 막 태어난 내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실은 혈연관계가 없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한 적도 있었지만 다들 닮았다고 하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 (-242-)
일흔 일곱이 된 아버지와 마흔 두살 외동딸이 등장했던 그 때의 이야기를 하나 둘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아버지와 가장 닮은 딸, 하지만 , 딸은 그런 이야기가 그닥 반갑지 않았다.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에서, 혈육이라 하기에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고,그 빈자리에 딸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면서 모았던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고,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은 ,조금씩 조금씩 늙어가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면서,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삼십대 중반에 딸이 태어난다. 하지만, 딸은 어릴 적 아버지가 남겨놓은 사진이 없었다. 아버지가 손수 찍었던 카메라 속 사진이 사라졌다. 어릴 적 아버지가 겪었던 전쟁 전후 세대의 기억은 외동딸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고유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불황이었던 일본 사회에서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기억 속 일본의 모습, 긴자를 좋아하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혼재하고 있었으며, 이케부쿠로의 암시장에서, 돈을 벌었던 부모님의 남다른 인생과 삶이 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암이 발명하게 되었고, 질병으로 인해 거동조차 하기 힘들었던 그 시기에 딸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간병에 매진하게 되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실체에 대해서 ,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걱정과 아픔을 중년이 된 딸은 일흔이 넘은 아버지를 보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 스스로 아버지와 가까이 하였고, 아버지 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가 해 주었던 음식, 그리고 어릴 적 자신이 남겨 놓은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 보고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이시카와 집에 대한 어릴 적 추억과 기억이 공존하게 된다.어머니와 아빠,그리고 딸, 세 가족이 다정하게 지냈던 그 때의 평화로웠던 기억들 너머에 숨어있었던 감사했던, 소중하고, 의미있는 삶이었으며, 센스 좋은 어머니의 추억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주방 가구 뿐만 아니라, 다이닝 룸, 손님용 방, 창고, 화장실, 부방 등등 어머니의 손이 닿은 곳을 바라보면서, 딸은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위로하고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뜨거운 감정과 울컥하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가지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해서, 삶과 죽음 저 너머에서 ,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나이듦이 부정적닌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혼하지 않았던 ,솔로였던 외동딸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 속에서,나의 삶을 기웃거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