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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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골 생활을 해보겠다고 강원도 평창에 열 평짜리 무허가 집을 샀다. 50년이 넘은 고목은 기우뚱하게 서서 지나가는 바람에 흙가루를 날렸다. 버려진 건축자재로 얼기설기 지어둔 터였다. 안방 벽을 뚫어 세탁기 배수 호스의 길을 냈고, 현관문인지 방문인지 모를 유리문에는 귀 떨어진 쇠고리에 놋수저가 꽂혀 있었다. 뒤란능로 통하는 문짝은 창호지가 반쯤 찢겨 펄럭였다. 벽지에는 까만 곰팡이가 넓게 폈고, 사바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불룩 내려앉은 천장을 쇠꼬챙이로 찌르니 고야 있던 빗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14-)

정신을 차리고 수돗가에 앉았다. 식칼로 닭을 치기 시작했다. 마당 한가운데 가마솥을 걸고 감자부터 껍질 벗겨 시작했다. 마당 한가운데 가마솥을 걸고 감자부터 껍질 벗겨 큼직하게 썰어 넝ㅎ었다. 닭과 양파, 당근, 고추, 대파도 큼직큼직 썰어넣었다. (-63-)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은 사람이다. 살면서 많은 선물을 주고 받았지만 줄 때도 받을 때도 의례적일 때가 많았다. 물건이든 현금이든 선물이라면 으레 빚으로 여겨졌다. 받는 순간 언제 이것을 갚아야 하나 생각하기 때문에 선물 받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주는 것도 조심스럽다. 받는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 조금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어서다. 그래서인지 선물은 내게 사회생활을 위한 예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내게는 좋은 선물인 사람이 참 많다. 사는 동안 참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116-)

이튿날 , 세 끼 각기 다른 이유식을 정성껏 끓여 먹이니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잘 받아먹었다. 금방 조리한 이유식이라 그런 듯했다. 지난번 돎보미는 한 번에 맣이 조리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일주일씩 데워 먹었다고 했다. 아기가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할머니도 좋아하셨다. (-168-)

결리고 쑤시는 어깨와 통증을 진통제로 가라앉히고 출근했다.날이 갈수록 환자 밥먹이는 일이 수월해졌지만, 상체를 거의 엎드리다시피 숙이고 환자를 향해 바른 자세로 두 시간 동안 법을 먹이고 나면 온몸이 파김치가 됐다. 밥 먹이고 정리하고 나면 총 네시간의 근무 활동 중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남자는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환자의 빨래나 청소도 못하게 했다. 그 대신 나에 대한 호기심을 자주 드러냈다. (-213-)

태어나고 살아지며, 그리고 죽는다. 우리의 삶은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삶의 흔적을 남기도 떠나게 된다. 살아가고, 견디며, 존재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 안에서 삶의 원칙을 세워 나갈 때가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아둥 바둥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주어진 삶을 채워가는 사람이 있다. 온전히 현재의 삶이 자신의 삶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질과 소유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게 된다.작가 이순자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의 물질을 우선하고, 삶의 보편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으며, 삶의 법칙에 대해서 스스로 깨트릴 때가 있다. 새로우 것에 도전하기 좋아하고, 무모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을 최고로 치고 있었다.

예순이 넘어 ,일흔이 다가오는 저자의 나이, 대체로 배움을 냐려놓고, 쉬엄쉬엄, 스스로 삶의 쉼표를 만들어 나갈 때이다.그리고 그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꼽씹어 보게 될 것이다. 새댁이 되어, 종갓집 며느리로서 살아온 지난날, 온전히 순종적인 삶을 자신의 삷의 전부인것처럼 살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은 영원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었고, 스스로 기초수급자를 자처하였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되니,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실현을 우선하게 된다. 불안과 걱정을 느끼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들과 다르게 살더라도, 비굴해지지 않으며, 나를 나답게 보여주는 삶이,인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나를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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