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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 싸인 :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선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평점 :

주변에 들리는 소리들을 박하는 음악처럼 여겼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 캔이나 뚜껑이 열리는 소리, 솔솔 풍기는 맛있는 냄새. 마치 이곳이 병원이 아니라 젋은 공원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소리에 집중하던 박하는 가까이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웃음이 터졌다. (-35-)
재이의 설명에 의하면 카리온의 또 다른 특이접은 괴물의 얼굴로 추정되는 부분에 두 개의 붉은 구멍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완전 얼었네. 거기서 얌전히 보고 있어." (-106-)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지자 박하는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병실에서 맡은 냄새도 카리온의 냄새였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냄새를 맡은 다음 날, 병원 시설 긴급 점검에 들어갔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3명이 함께 움직이며 이곳저곳을 확인하는 게 의아해서 기억에 더 남았다. (-279-)
도망가는 줄 알았던 카리온이 자신의 바로 위에 있다는 사실에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이를 악물고 천천히 고개를 든 도영의 심장이 킁 내려앉았다. 몸을 숨겼던 카리온이 다시 돋아난 팔로 천장에 매달려,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420-)
빛. 카리온이 가장 두려워하고 그들을 연약하게 만드는 것. 그들은 핵을 정화함으로써 인간들의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붉은 조명 없이도 카리온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핵의 색깔이 밝아질수록 카리온은 동화인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동화인은 카리온의 세계에 있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둠이었으니까. (-527-)
독특한 소설 한 편을 읽게 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벗어난 이들 카리온과 동화인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 말이다. 이 소설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의오류에 대해서 소설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으며, 작가의 의도에 맞게 쓰여진 소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즉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으며, 그 절차와 원칙이 우리의 보편성과 동떨어져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다채로운 색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흑백의 세계에 놓여지는 개의 삶에 대해서, 인간의 삶과 심해 깊숙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생물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이 말하고 있는 괴물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꼽씹어 보게 되었다. 미지의 생명체, 불확실한 생명체, 인간에게 해가 되거나 공포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괴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심해에 살았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카리온은 인간 세계에 서서히 침투하게 되는데, 인간 사회에서 병원균이 거의 없는 공간, 병원에까지 카리온이 들어서게 되었다. 인간은 카리온을 보지 못하고, 카리온은 인간의 피를 재물로 자신의 생명을 확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서서히 공포를 느끼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즉 이 소설은 공포를 느끼는 존재,주인공 박하는 어떻게 괴물 카리온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지, 빛이 없어야 하는 세상, 흑백이 존재하고, 다체로운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꼽씹어 보게 되는 그로테스크한 한국형 스릴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