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꽃길이라 내가 꽃인 거예요
김서희 지음 / 포레스트 웨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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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순간은 언제나처럼 짧았다.

짙은 속눈썹을 달고 깜빡이는 눈처럼

몇 초에 한 번씩 바뀌는 신호등처럼

가을만 되면 죽음을 선언하는 은행잎처럼

모든 게 바뀌고 늙어갈 동안

우리는 그대로이기로 했다.

사랑했던 순간에 정지 버튼을 눌러두기로 했다. (-17-)

웃음거리

날씨가 좋아서

세상의 모든 꽃이 웃는 날

나는 네가 좋아서

세상의 모든 웃음을 다 짓고 있다. (-40-)

하필이면

하필이면 난 너를 그곳에서 마주쳤고

하필이면 그날의 날씨는 맑았고

하필이면 햇살이 우리 둘의 스포트라이트가 됐다.

하필이면 난 그냥 지나치지 못해 뒤돌아봤고

하필이면 넌 아련한 눈으로 내 눈을 녹였다.

하필이면 가게 문은 닫혔고 햇살도 끊겼다.

하필이면 버스가 빨리 왔고 난 그 버스를 탔다.

하필이면 네가 가게에서 나오는 걸

창문으로 봐버렸고

하필이면 너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버스가 섰다

하필이면 너는 버스를 타 내 옆자리에 앉았고

하필이면 난 이어폰을 두고 와

노래를 듣지 못했다.

하필이면 자꾸 신호가 걸려 버스는 느리게 갔고

하필이면 난 내 못생긴 옆얼굴만

네게 계속 보였다.

하필이면 넌 옆에서 웃어댔고

난 옆을 보지 못했다.

하필이면 난 손바닥을 보인 채 앉아있었고

땀이 난게 다 보였다.

하필이면 네겐 펜과 종이가 있었고

열심히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게 네 전화번호였고

내 손에 슬며시 얹어주었다.

하필이면 난 귀가 빨개진 채 열리지 않는

창문을 힘겹게 열었고

하필이면 넌 버스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필이면 난 입이 열리지 않았고

넌 바로 내렸다.

하필이면 열린 창문에 종이가 날아갔고

난 안절부절못했다.

하필이면 네가 그 모습을 봤고

몹시 실망한 듯 보였다.

하필이면 왜 바람이 세게 불었는지 화가 났고 난

후회했다.

하필이면 그때 바로 다음 정류장에 벨을 잘못 누른 사람이

있었고 난 눈치껏 뒷문에 가서 섰다.

하필이면 봄바람이 매서웠지만 난 멈추지도 않고

계속 뛰었다.

하필이면 아직 버스 정류장엔 번화번호가

적힌 그 종이가 있었고

하필이면 아직 가지 않은 네가 서 있었다.

하필이면 넌 나를 보며 활짝 미소 짓고 있었고

하필이면 난 행복했다.

하필이면 넌 내게 말을 걸었고

하필이면 난 심장이 크게 떨렸다.

하필이면 우리의 거리를 넘자 가까워졌고

하필이면 너는 우리의 만남을 권했다.

하필이면 난 사랑했다.

하필이면 우린 행복했다

하필이면...(-46-)

사랑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언제 사랑을 하였고, 언제 사랑을 끝냈었던가, 사랑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사랑에 대해 언급할 수 있을 때,우리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사랑에 대한 충만감을 생각하게 된다. 삶의 근원적인 발자국 속에서 나의 삶에 대해서,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삶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나의 인생에 대해서 꼽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앞에 놓여진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즉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나를 스스로 객관화하는 과정에 있다. 나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의 삶의 발자국 하나하나 남기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끈한 연결고리가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연과 우연이 이어져 삶의 필연이 된다. 그리고 그 필연적인 관계가 인연이 되고, 사랑이 가랑비에 옷 젖듯 쌓일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의 삶에서 '하필이면' 이 빠지지 빠지지 않는 것에는 나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에 있었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느끼면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오늘 행복할 수 있고,내일 행복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관심과 배려,그리고 나의 선택과 결과에 따라서, 내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기죽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나의 삶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때로는 나의 페이스대로 살아가며, 행복와 기쁨, 희망을 스스로 얻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 너는 하필이면, 여기서 태어났는가?'라고 되물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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