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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메이트 - 영혼의 치유자, 반려견과 함께한 나날들
하세 세이슈 지음, 채숙향 옮김 / 창심소 / 2022년 5월
평점 :
저는 10년에서 15년 까지 밖에 살지 못해요.그래서 잠시라도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너무 괴롭답니다. 저를 기르기 전에 그걸 꼭 기억해 주세요. (-8-)
"너두 추웠구나.이쪽으로 오렴. 서로 따뜻하게 해 주자."
사에키가 두 팔을 벌리자 루비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에키는 달려온 루비를 안아 올렸다. 루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37-)
"루비, 너는 안 돼. 너까지 없어지면 난 어쩌라는 거야."
팔 안에서 루비가 꼬리를 흔들었다. 기침은 멈춰 있었다. 작은 몸이 금세 비에 젖어들었다. (-61-)
유토는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내려갔다.거실은 캄캄했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햊딘 덕분에 가구 등의 위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유토는 구석에 찬장을 노렸다. 제일 아래 서랍 안쪽에 돈이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엄마가 숨겨 놓은 비상금이었다. (-97-)
나는 딱 한 걸음 후타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시선을 낮추고 속옷 조각을 든 팔을 힘껏 뻗었다. 후타가 다시 거리를 좁혀왔다. 후타의 눈망을이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나의 착각일까.적어도 신사에서 본, 경계하는 기색은 상당히 옅어져 있었다.
"후타." (-149-)
메구무는 전망대 난간에 허리를 기댔다. 아직도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고 있었다.개를 보기 전까지 후끈 달아올랐던 몸이 지금은 완전히 식어 있었다.
개는 무섭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는 잊을 수 없었다. (-207-)
"치와와 조이군?"
"그래 ,지난 주에 인디라는 아이에게 습격을 당했나 봐.몇 바늘을 꿰메는 큰 상처를입었대."
"인디는 안 돼.누구든 상관없이 싸움을 건다니까. 그래서 난 인디가 오면 도그런에서 나가 버려." (-243-)
그러나 멸종 직전이 된 시점에서,버니즈의 유전자는 이미 위기 상황을 맞이한 뒤였다. 암 증사잉 나타나는 개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조직구성육종 인자는 이 견종의 단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91-)
"괜찮아. 카타. 소변을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부끄러워 할 거 없어."
나는 카타의 마리를 쓰다듬었다.쓰다듬어 주면 반드시 반응하는 카타의 꼬리가 꿈적도 하지 않았다.이렇게나 의기소침한 카타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353-)
어릴 적 마당에 풀어놓았던 강아지가 생각난다.인간의 삶에 동거동락하면서, 살아온 강아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이 인간에게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삶의 근원적인 발자국이 되었고, 내 삶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삶과 사회 속에 강아지와 함께 한 충견이 있어서다.
소설 『소울메이트』에는 일곱 스토리와 일곱 강아지가 등장하고 있다.최근 들어서 댕댕이라는 이상야긋한 단어가 반려견을 대체하고 있으며, 댕댕이 축제나 행사들이 지역에서 하나의 트렌드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개의 종류로는 치와와, 보르조이, 시바, 버니즈 마운틴 도그 , 웰시 코키 펨브룩, 저먼 셰퍼드, 잭 러셀 테리어 가 있다. 작은 강아지부터 대형 강아지까지, 멸종 직전의 강아지도 등장하고 있는데, 인간이 귀여워 하는 종, 나와 너무 흡사한 모습을 가진 , 인간과 친밀한 종은 생존할 가능성이 크며,그렇지 않은 개는 멸종 가능성이 더 크다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개를 식용으로 먹는 것에 대한 혐오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작가의 주변의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실화들을 개의 시선으로,개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인간의 삶과 친숙하면서, 인간 사회의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종으로 개를 손꼽고 있다. 내가 키우는 댕댕이가 떼룰 쓰거나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마치 주인인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만약 개가 말을 할 수 있고,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면,우리는 인간의 삶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그만큼 인간은 개와 함께 하면서,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시간을 공유하고, 노력을 공유하게 되며, 삶의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의 시선에서 개의 생태와 행동을 깊이 관찰한 흔적이 소설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마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