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정보영 지음 / 모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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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서른은 까마득한 것이었다. 어릴 때 서른의 형 누나를 보면, 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이었다.그땐 내가 서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스무살 때 서른에 대해 얼핏 생각해봤다. 스물 다섯 살 때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다.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 서른이 된 나는 뭐가 된 걸까? 나름대로 뭘 하긴 했는데, 뭐가 됐다고 하기엔 애매한 서른이 되었다. (-7-)

"정보영 학생 되시죠?"

나는 네네, 대답했다.

"축하드립니다. 제12회 윤동주 시문학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자리에서 확 일어났을 때 감도는 현기증처럼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전화기에서는 말 없는 나를 불렀다.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42-)

"말단비대증이 맞군요."

우려한 일이나 생각지 못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처음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정말로?' 라는 의문이나 '아닐거야' 라는 현실 부정이다. 일찍 나가야 하는데 알람을 못 듣고 늦게 일어났을 때,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 등등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의문과 부정의 순간이 참 많았다. (-100-)

선배의 장례식장은 조촐했다. 한산했다. 사흘 뒤 발인을 했고 선배는 가루가 되었다. 선배가 화장되는 동안 나는 주차장 구석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사실 선배가 죽었다고 했을 때부터,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흘 내내 , 그리고 발인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답자기 울컥했다. 난데없이 눈물이 치솟았다.

선배는 감정 기복이 심한 조율중이 있었는데 다른 선배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126-)

아픔은 전염서이 있어서 앓는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병사에 있는 동안 사소한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다.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이토록 무한하게 하는 걸까. (-162-)

세수하고 양치하면서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수술하기 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나인데,내가 아니었던 나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땀이 많았고 늘 배가 출출했던,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비대해지고 단단해지던, 나 아닌 나 말이다. (-203-)

'공허' 가 붕 떠 있는 느낌이라면,'허무' 한 것은 대상과의 혹은 타인과의 단절에서 오는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이다. 세상이라면 좀 거창하고, 대상에게 품었던 기대가 어긋났을 때, 우리의 감정은 바닥을 모르고 한없이 아래로곤두박질치게 된다. 그때 우리는 떠올린다.'아, 허무하다.' (-231-)

작년 5월 지역 가까운 곳 대형마트에서, 마트 앞 주차장 앞에서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60대 여성이 사망한 적이 있었다. 무심결에 지나가곤 하였던 그 장소에서, 자동차와 사람이 겹쳐졌던 그 좁은 공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보면서, 인간의 삶이 한 순간에 생과 사를 오간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었다. 살아가고 아둥바둥 살아온다는 것이 죽음 앞에서 허무해지고, 나의 삶이 공허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나의 가치관은 크게 요동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상황과 조건을 견디는 것에 있었다. 살아가면서 항상 마주하게 되는 여러 순간들이 ,불식간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이해, 겸손과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스물에 겪었던 삶의 무게가 서른 이후에 전면 바뀌게 됨을 인지할 수 있다.

누구나 어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스물 에서 서른이 넘어가는 과도기, 저자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얻고 말았다. 저자는 그 순간을 애매한 어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그 순간 죽음에대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의사 앞에서,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병에 대한실체, 그 실제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자각하였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즉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주어진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지 , 작가의 시선으로 응시해 본다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가벼운 여유가 생길 수 있다. 바로 앞에 일어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나타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좌절이 무디어지게 되고, 성공에 목매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주어진 삶과 채워지는 삶의 경계에서,나에게 필요한 삶은 어디까지인지,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법까지 느낄 수 있다. 미워하지 않고, 내 살을 사랑하고,나와 타인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고민하게 되었고, 내 삶의 따스한 온기를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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