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았던 손 다시 잡으며
송용식 지음 / 마음시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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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부지불식간에 찾아들었다. 그렇게 풍요롭던 유년의 기억과 아버지의 마당을 밟아 봤으면 하던 염원이 고향집을 찾게 했다.인터넷에 본적지 주소를 입력하여 위치를 찾았다. 나주 혁신도시에서 나주역으로 가는 왕복 4차선 국도와 금천면사무소에서 봉황으로 가는 고동교차로 모서리에 빨간 위치가 나타났다. 새로운 기대에 흥분이 일며 설레는 감정은 무엇일까. 주소지를 찾아 대문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13-)

엄혹했던 왜정시대, 아버지는 머슴처럼 살지 않겠다며 어머니와 현해탄을 건넜다. 고물 장사를 해 돈이 모일 때마다 고향에 전답과 과수원을 사두였다. 해바이 되면서 돌아와 넓은 집을 장만하셨다. 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가끔

"누나 태어났을 때 미역 값까지 아낀 지독한 양반이 느그 아버지였다." 라며 힘들었던 일본 생활을 들먹이셨다. 그렇게 그 시절을 본앤 사람들, 배고픈 시절이 한으로 남았던 어머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아버지는 두 분의 삶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단호하면서도 다감하셨던 아버지. 당신에게 마당은 살아야 했던 일터였으며 꿈을 펼쳐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15-)

서울과 남평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텃밭은 며칠만 소홀해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방울토마토의 왕성한 번식력은 미처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간격을 너무 좁게 심어놓은 탓인지 자기들끼리는 물론 옆의 고춧대까지 넘어 들어왔습니다. 그 기에 눌린 옆 고추는 언제나 클는지 손주 녀석의 그것보다 더 작았습니다. (-53-)

오늘은 소 팔러 가는 날.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하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학교 결석까지 시켜가며 소 팔러 가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외양간에서 푸짐한 쇠죽을 반도 먹지 않은 것을 보니 자기 신상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미리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느릿느릿 대문간을 나서기 전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저남의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68-)

돌아보면 해방둥이인 형님은 유별났다. 광주 명문고를 졸업하고는 의사 되기르 바라던 아버지 기대를 저버리고 국문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라디오 단막극 공모에 <피아골>이 당선되더니 대학 시절에는 아버지 몰래 곳간 나락을 팔아 자신의 희곡을 연극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88-)

이사하고 책을 정리하다 박사학위 논문 열 권을 발견했다.까맣게 잊고 있었던 논문과 그 시절이 오래된 편지의 소인처럼 다가왔다. 인생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사십대와 오십대 초반.무엇에 홀린 듯 열정과 노력을 쏟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 페이지씩을 넘겨보았다. 많은 생각이 들고 났다. 지나간 일이기에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97-)

이 책을 읽으면서,저자의 나이를 짐작하게 된다. 열여섯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 당시 저자의 아버지 나이는 쉰 셋이었다.어릴 적 머슴으로 살기를 거부하였던 아버지는 멀고 먼 타향 일본 현해탄을 건너게 된다. 일본에서 고생하고, 지독하게 벌었던 돈으로 고향 나주에 땅과 전답, 사과밭을 샀다.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하게 된다. 머슴에서 , 지독한 구두쇠로 살면서,자식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어닐 적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는 , 원망과 섭섭함으로,아버지를 바라봤으며, 자신이 그 나이를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그 지독한 마음이 자식을 사랑는 또다른 모습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리움과 미안함 ,죄채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고향 나주, 간이역으로 변한 남평역에 다다를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어리 적 시골에서 ,학교 수업을 빼먹고, 소를 팔았던 그 기억들, 아버지는 그 소값으로 자녀들을 공부시켰고, 배움으로 자신처럼 머슴으로 살지 않기를 원하였다. 당당하게 살아가고, 약자, 피지배층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산 경험들을 , 저자는 고향의 흔적들을 주섬주섬 담아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된다.

내 주변에도, 그러한 이들이 있다. 소위 쇠심줄처럼 고집이 쎈 ,베이비붐 세대를 지나온 어른들 말이다. 저자의 기억 속 아버지는 돈 밖에 모르는 쇠심줄 고집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환갑이 지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자녀는 나주에서 벗어나 서울에 기반을 닦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터전이 있었다. 굶주리고, 배곪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마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의 마지막 생, 그 나이가 되면서,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삶에서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의 후반기 인생을 고향 나주에서 흙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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