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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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시간은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 같고,

청춘은 마치 머리 위에 매달린 링거 같아.

텅 빌 때까지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는.

창밖은 여전히 햇살 눈부신 밝은 세상인데.

그냥 이런 것이겠지. (-8-)

린화펑의 손이 떨렸다. 요 몇 년 새 점점 더 심해졌다.

"엄마는 알아서 팔고 있잖아!"

그래, 팔고 있지.

하지만 그녀가 남자 몸 아래 누워 있는 동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야오, 네 학비는 해결됐구나.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다했다. (-38-)

이야오는 외투를 벗어 물을 짰다. 바지와 상의도 대부분 젖어 버였다.

발아래로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다. 이야오는 손으로 연신 얼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닦아 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구썬시가 바지를 높이 걷어 올리고 단단한 종아리와 허벅지를 드러낸 채 거무튀취한 연못에 들어가 있었다. (-150-)

탕샤오미는 휴대폰을 덮고 교실로 되돌아가 아직 문가에 있는 구썬시를 불렀다."야."

구썬시가 고개를 돌렸다.

"가서 걔 볼래? 지금 병원에 있대."

"어느 병원?"

구썬시가 돌아서서 탕샤오미에게 다가섰다. (-221-)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어떤 생물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커다란 고토을 당하고 황산에 부식되고 끓는 물에 삶아져도 살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런 고통을 견디는 걸까?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276-)

치밍과 구썬샹은 응급실 밖에 앉아 있었다.

유리창 안으로 이야오가 하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머리커럭은 하얀 모자로 싸이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를 썼다. 머리맡에는 링거병이 매달려 있어 포도당과 각종 약물로 희석된 혋장이 가늘고 투명한 관을 따라 이야오의 팔로 이어졌다. (-332-)

친페이페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나치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중위엔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더니 손으로 중위엔의 발을 감쌌다. (-412-)

소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에서 주인공 이야오와 치밍이 있다. 치밍과 이야오는 한동네에 살고 있는 열일곱 , 예민함과 감성으로 채워진 열일곱 고등학생이다. 서로 집에 숟가락 몇개인지 알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이 관계는 친구의 우정을 넘어서서, 서로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수 있으며, 이야오의 딱한 현실을 바라보는 치밍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즉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야오,이야오는 엄마 링화펑을 차갑게 대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삶의 거리감을 엿볼 수 있다. 삶의 상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여러가지 발자국들이 두 사람의 삶의 근원적인 현실 문제가 되고 있었으며, 삶의 고통과 주어진 시간에 따라서 피폐해지는 우울과 불안 ,폭력에 길들여지는 이야오의 모습에 대해 연민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야오는 어마에게 왜 모질게 대하는걸까, 되물어 보게 되었다. 자신의 몸을 팔아야 하는 현실, 그것이 생활비가 되고, 이야오의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런 현실 자체를 이야오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린화펑을 엄마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오의 자아가 엿보이며, 상처는 엄마 링화펑에게서, 이야오로 전염되고 있었다. 주어진 비참한 현실을 응시하면서, 주어진 가정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체감하였던 이야오,그 이야오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 치밍의 대조적임 모습, 사로의 삶을 응시하면서,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결과론적인 삶이 아닌 삶의 과정 하나하나 응시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중국 사회의 하류인생을 이야오와 린화펑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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