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박민형 지음 / 예서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고시텔의 출입문이 열린다. 흰 가운과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들것을 든 채 걸어 나온다. 들것에는 한 구의 시신이 누워 있다. 프루스름한 천에 싸인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시신은 고시텔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이다. 노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며칠 만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10-)

상길은 어머니가 옆에 계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었다. 인철도 어머니가 계셨다면 집안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또한 여동생도 집을 나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집에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한 가정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아무리 힘든 역경이 몰아쳐도 어떻게든 견뎌 내고자 하느 삶의 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 상길은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었다. (-69-)

지연은 효심이 적어 준 전화번호를 눌러 본다. 가정집번호인 듯 했다. 하지만 신호가 가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느 멘트가 이어진다. 지연은 시어머니가 잘못 적어 주었나 싶어 전화번호를 확인하기로 했다. 석연치 않다. (-118-)

"다들 모이자고 한 것은 어머니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서야."

상길의 말에 가족들의 시선이 상길에게로 쏠린다. 상길은 가족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을 이어 나간다. 상길은 어머니를 계속해서 모시는 건 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하는데,장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살피는 게 쉽지 않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이야기했다. 상길의 말에 준길은 수긍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153-)

숙희는 자동차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자동차를 출발시킨다.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번도 이렇게 숙희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던 효심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도, 효심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숙희는 정말 오래된 가족보다 더한 친구가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다.힘이 들면 힘들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자식 때문에 속이 상하다고 ,하다못해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할 법도 했다.하지만 효심은 항상 괜찮다고 했다. (-224-)

삶과 죽음 너머에 가족이 있다. 아버지의 존재와 어머니의 존재, 이 소설에서 한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인공 한효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을 본다면, 우리의 일상 속 누군가의 삶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동하기 힘들어지며, 기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루 하루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편의점 앞 '보금자리 고시텔'에서 나오는 유사한장 남겨 놓지 않는 노인의 시신 한구, 그리고 그 시신이 머무러 있었던 곳에 외상으로 남겨진 6,700원, 그 돈이 그 노인의 유언이나 다름 없었다. 효심은 외상으로 편의점 물건을 사갔던 노인의 뒷모습을 기억하였다.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돌려받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돈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인간의 삶,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물질과 정신의 경계에서 ,우리의 선택롸 결정의 한계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차라리 모르면 더 나았을 것을, 안받아도 되는 것임에도,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은 씁쓸할 뿐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살아가다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결국 자신이 아닌 자녀의 힘을 빌려야 할 때, 책 속의 주인공 효심이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나의 이야기,나의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실제로 , 재산문제로 인해서, 돈문제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실버세대가 늘어나고 있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들, 그 상황들이 우리의 삶을 파괴할 때가 있다. 아버지의 부재,그리고 어머니의 부재, 소설 속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삶을 응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삶의 발자국을 어떻게 남기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망자 앞에서 소주를 따라야 하는 날이 한 번 쯤은 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현재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서로 마주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