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지만 청바지는 입고 싶어
강민 지음 / 프롬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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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된 그리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모든 긴장을 풀어버리고 싶을 때 친구를 만난다. 친구와의 대화에는 긴장이 없다. 점잖은 중년의 나이에,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도 아무런 수치를 느끼지 못한다.'잘난 척 그만하라' 며 직격탈르 날려도,'살 좀 빼라'며 진담 반의 농을 던져도 말 속에 칼이 없으니 듣는 이에게 상처가 없다. 유치하면 유치할수록 자리가 즐겁다. (-109-)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옆에 있던 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느낌. 슬픔이라 하기에는 '슬픔'의 낱말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슬픔'의 감정은 '고통'일 텐데 고통과는 그 연원이 달랐다. 이게 뭔가? 이게 뭔가? 하다가 그냥 눈물만 쏟았다. 서러웠다. 그래 맞다. 서러웠다. 친구가 죽었는데 서러웠다는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복받쳐 오르는 눈물의 원천은 '슬픔'의 단어보다는'설움'의 단어였다.그래서 그냥 펑펑 울었다. 서러워서, 친구 아들이 꺼이꺼이 울면 내가 더 서러워서 울었고, 그 친구 딸이 가슴 치며 울면 또 다시 서러워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128-)

동의는 했으나 시골 생활에 소극적이었던 아내도 몇 년의 시골생활을 나름대로 견뎌내었다. 잔디 깍이,잡초 보기, 꽃 심기, 텃밭 가꾸기, 인생극장에서 보았던 일들이 우리 일이 되었지만, 잘 깎인 잔디를 예쁘다고 해주고, 잘 자란 상추를 맛있다고 해주며 그렇게 저렇게 살았다. (-146-)

머리 감기는 미용실과 이발소에 큰 차이가 있다. 자세의 차이다. 겸손한 자세와 거만한 자세의 차이는 아닐 테고, 서비스와 실용성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내 름대로 추정한다.

이발소는 앞으로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얌전히 모아 허벅지 위레 올려둔 후,.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이발사가 갑이 되고, 손님이 을이 되는 자세다.

머리를 약간 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머리를 감기던 이가 바로 머리는 눌러버린다. 더 숙이라는 것이다. 비누거품을 낸 후 손가락 열개를 이용하여 머리를 박박 문지르다 그마저 귀찮으면 딱딱한 솔을 이용하여 북북 문지른다.기름 때 낀 냄비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좀 좋지는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원한 맛은 있다. (-181-)

중용의 가치는 중용에도 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아닌 딱 적절한 단계다. 중용은 방관이 아니라 지극한 관심이다. 처에게 충실하고 첨에게도 충실한, 여기에도 저기에도 치우치지 않은 관심이 중용이다. 가난할 필요도 부자일 필요도 없는 적절한 욕망이 중용이다. 짜짱면을 먹기 위해서는 오천 원이면 되는데, 만 원을 원하면 불필요한 탐욕이다. 중용은 무소유가 아니다. 필요한 만큼 만의 소유, 이게 중용이다. 필요한 만큼의 관심, 필요한 만큼만의 개입, 필요한 만큼의 욕심이 중용이니, 중용은 피곤할 정도의 성실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용은 어렵다. 그래서 중용은 가치가 있고, 중년의 아름다운 가치로 등극되어 있다. (-266-)

중년은 청년과 다르다. 사회가 요구하는 관대함과 포용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중년에게 책임감과 의무감을 강하게 요구하고 , 삶의 족쇄를 채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술과 가까이 하면서 생가나는 신체적 변화, 욕체와 정신이 서로 분리되는 상황이 중년의 일상에 나타나고 있었다. 삶의 근원적인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삶의 근원에 대해서 돌아보게 한다. 살아가면서, 느꼈어야 하는 요소요소들, 청년이 되고 싶어하는 철없는 중년의 삶의 철학과 인생 마인드를 이해할 수가 있다.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요소요소들이 우리의 일상 속에 고스란히 묻어내 있었다. 그래서 중년은 서글프다.그리고 그것을 견뎌야 하기데 더욱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중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우리의 일상이 어느 덧 이발소가 편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성찰과 이해 ,그 과정 속에서 미세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간파할 수 있다. 주어진 삶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살아가면서, 죽음에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응시하게 된다. 친구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게 되는 것, 중년의 삶에 친구가 전부나 다름 없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주어진 삶을 성찰하고, 나에게 필요한 요소요소들을 습득한다면, 내 삶을 들여다 보면서, 나의 가치관 속에 내재될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내 삶을 응시하느 과정에서,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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