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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 -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어느 직장인의 젖은 낙엽 껌딱지 존버 에세이
권수호 지음 / 드림셀러 / 2022년 4월
평점 :
첫째를 낳고 아버지는 시내에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농사만 지으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운 좋게 사법서사(지금의 법무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하지만 가방끈이 짧았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무실 청소와 잔심부름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악착같이 일하며 어깨너머로 업무를 배웠다. (-17-)
비보호 좌회전 구역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죄회전을 한 운전자의 과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보호' 라는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운전자를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요즘의 내가 매일매일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이런 이유였을까?
보호를 받던 어린이는 어느새 나이를 먹어 보호자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으로,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이제는 누구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마치 비보호 좌회전을 하듯 자신을 살펴야 하고, 스스로 움직여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려할 게 많아진다. 하나를 선택하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흔이 되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 [불혹(不或) ]던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생이라는 길에 마주한 교차로에서 상황을 적확하게 바라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비보호 좌회전처럼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말이다. 신호등 하나 없는 인생의 교차로 앞에서 42년 묵은 이놈의 자동차는 오늘도 어느쪽으로 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닜다. (-45-)
애들이 읽는 책을 보며 이렇게 감동할 줄은 몰랐다. 사실 여기서 아이르 어른으로 바꿔도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읽는 내내 찔끔거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다. 또한 이는 마음 보기 명상에서도 자주 접했던 내용이다. 나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부정의 회오리로 발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몸에 배지 않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87-)
월요일 아침 출근길. 새우들이 부지런히 기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쩌면 이 새우보다도 여린 존재가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무엇이 그렇게 걱정스러웠을까. 뚜렷한 목표와 방향도 없이 그저 하루를 소비하면서 말로만 더 나은 삶을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느다란 다리를 땅에 딛고 거친 물살을 피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새우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오늘 아침이다. (-164-)
화(火)를 내면 화(禍) 가 온다
어찌 사람이 화 한번 안 내고 살 수 있겠냐만, 참아도 될 일은 좀 참아도 된다.(근데 이게 무슨 말이지?) 화를 내면 화가 온다는 이 말을 늘 마음에 집어넣고 있어야 겠다.특히 운전대만 잡으렴 분노 조절장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이제부터는 내 앞에 초보 운전 차량이 나타나면 반갑게 맞이할 참이다. 마음속 '참을 인(忍) '자를 키워주는 훌륭한 스승님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209-)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시간의 위대함'을 체험했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더 많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내겐 군대가, 특히 이등병 일병 시절이 그랬다. 이럴 땐 답이 없다.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버텨야 한다.그러다 보면 결국 끝난다. 마치 매서웠던 겨울이 봄 햇살 앞에 와르르 녹아내리듯이. (-240-)
지난 날을 기억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우리는 과거 우리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걱정해야 했으며, 부족한 삶을 살아온 지난 날이 있었다. 주어진 삶 속에서, 배우지 못해서, 먹지 못해서, 잠자리 걱정 때문에 하루 하루 현재를 걱정했던 그 시간이 말이다. 겨울이 되면, 따스한 방안훈기를 위해, 연탄 중독에 쓰러져 가야 햇던 지난날, 난로 위에서, 양은 도시락을 올려 놓으면서 먹었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이 사라지고, 하루 하루 물질적 풍요속에서 쓰레기로 엄처나는 빈약한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간다. 즉 이 책은 우리의 삶 속에 잊혀진 존버정식을 회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느꼈던 추억이 어른이 되면, 지워지게 된다. 농촌으로,시골로, 골목길로, 문방구 불량식품을 먹으면서 잘 성장한 그 때의 추억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우리는 그 시절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비보호좌회전 상태에 놓여지게 된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그 나이가 바로 마흔 ,불혹이라 부르는 나이였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 채 나이 먹어가면서, 판단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착을 가지게 되는 나이가, 작가의 나이 때, 마흔 둘의 나이였다. 사회에서 대접받는 어른도 아닌 것이, 아이처럼 떼를 쓸 수 없는 그 나이, 책임져야 하는 짐은 늘어나는 반면 인생이 절대적 수확량은 빈약한 상태, 바로 이 나이였다. 그래서 살다보면 알게 된다. 주어진 삶을 극복하고, 그 삶에 충실한 인생을 겪어가는 것, 내 삶의 인생 발자취, 발자국을 어디에 남겨놓는지에 따라서, 내 삶은 바뀔 수 있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삶이 어디인지 이해할 수 있고, 주어진 삶의 존버 정신을 마주하게 된다. 살아가되, 경험하고, 경험 속에 내재된 지헤가 나의 삶을 바꿔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