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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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0일 정시 면접이 다가왔다.현묵은 면접을 앞두고 잠을 좀 설쳤다.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이틀 전부터 시작된 어깨 쪽 내출혈 때문이었다. 비쩍 마른 현묵의 몸에서 오른쪽 어깨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14-)

현묵의 집 만큼이나 현묵의 책은 깨끗하다. 책에는 메모는 커녕 줄 하나 쳐져 있지 않다. 책 모서리를 접은 흔적도 없다. 현묵은 책등에 자국이 남을까 활짝 펴서 읽지도 않는다. 번역을 하는 원서에도 그 어떤 흔적이 없다. 중간중간 표시는 어떻게 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심지어 참고서와 문제집도 그렇다. 책은 오래되어 낡았을 뿐 인고의 흔적이 거의 없다. 현묵에겐 결벽증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여기엔 더 큰 이유가 있다. 내출혈은 관절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흘러나온 피가 고이고 혈종이 되고 이내 염증을 일으켜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졌다. 염증이 다 낫지 않은 관절에선 또 내출혈이 일어나곤 했다. 관절은 파괴되고 또 파괴됐다. (-46-)

이렇게 번역 업데이트는 수년간 이어졌다.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 실종되기도 했으므로 어떨 땐 두 달 만에 글이 올라오는 일도 있었지만 현묵은 멈추지 않았다.『끝나지 않은 이야기 』 게시판을 본 사람은 이것이 오직 현묵 혼자의 미션이고 홀로 뛰는 마라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묵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93건의 번역 원고를 올렸다. 놀라운 지구력으로, 씩씩하게 탑을 쌓으며 암흑기를 걸어왔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전진했지만 그 결과물은 스트라이더다운 것이었다. (-87-)

학교생활의 대전환은 4학년이었던 2010년에 일어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현묵을 위한 전동 휠체어가 마련되면서부터였다. 3년 넘게 교실 안에 완벽히 갇혀 있었고 유일한 이동 수단이 엄마였던 현묵에게겐 혁명과 같은 일이었다. 그때부터 현묵의 자신감은 다른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교 회장 출마는 엄마의 가슴 속에 깊이깊이 남겨진 사건이 됐다. (-145-)

"옆에서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감독관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풀어서 채점을 해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얼마든지 시간이 거려도 좋으니 이 시험지를 완전히 내 힘으로 풀자, 이렇게 목표를 잡았어요." 책상에서 풀고, 침대에서 풀고, 밥을 먹으면서도 풀었다.'답안지는 없다, 모든 문제에 다 답을 달아야 끝나는 죽음의 코스다.' 이렇게 좀 아이 같은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걸려 전국 연합학력평가 수학 시험지를 모두 풀어냈다. 이것은 현묵의 첫 고교 수학 시험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너무나도 많이 넘겼고 그래서 여기서 나온 점수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나, 현묵의 시험지에는 모두 정확한 답이 적혀 있었다. "뭘 잘했다라기보다,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틀리지 않았구나,그런 생각에 정말 기분이 째지는 줄 알았어요." (-224-)

우리는 키보드로 자판을 치고,두 손으로 책을 펼쳐 들고, 코라 병을 따고, 물을 마샤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파하지 않아도 되고, 슬퍼하지 않아도 되며, 누군가에게 보살핌이나 도움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아이가 있다. 바로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의 주인공 박현묵이다. 2000년생 박현묵은 초등하교 입학까지 난공불락이었다. 그 어느 곳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구책으로 선택한 곳은 시흥의 작은 초등학교였으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모든 일, 현묵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선택과 결정에 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관절이나 뼈에 생기는 내출혈이 문제였다. 염증이 나타나고,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통증이 나타난다.심각하면, 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그래서 현묵은 공부를 할 때, 필기구가 아닌 ,눈으로 공부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학습을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공부 방식이 아닌 극한 환겨에서 공부를 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중학교,고등학교는 차원이 달랐다. 학교에서 적응하는 것은 둘째치고, 학교 생활이 아닌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 되었고,17살 되던 해, 자신만의 죽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 톨킨의 번역되지 않은 저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를 번역하게 된다. 실제 원서의 오류를 정확하게 짚어낸 현묵은 , 톨킨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영문학자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4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위대한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어떤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 씩씩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저자의 남다른 노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번역, 수능 직전까지 번역을 하였고, ㅍ출판사가 정한 마감을 지켰다. 그리고 그느 자신의 주치의 의사인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한강성심2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인 김준범 의사의 추천사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즉,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의 하나의 프로젝트는 그것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깊은 울림이 될 수 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나 자신을 이기는 것,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가 번역가 박현묵이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페이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인생 스톨리를 전해준다는 것,그것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깊은 울림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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