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
김동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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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월 초순에 풀려났다. 주소지였던 서부경찰서의 서장실에서 신병인도가 이루어졌다. 간난신고 끝에 내 소재를 알아내셨고, 그 후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 끌고 50사단 정문 앞에 오셨던 아버지.치묵하는 보초병에서 내 소재를 묻고 또 물었던 아버지는 마음이 떨리셔서 차마 그곳에 못 오셨다. 대신 막내 고모가 나를 데리러 왔다. (-29-)

전경 대여섯 명이 여학생 한마를 짓밟고 있었다. 홀깃 여학생이 입은 옷이 눈에 띄었다. 연한 분홍색의 꽃무늬 원피스였다. 그날 그녀가 입은 옷.

왜 그랬을까. 정의감도 아니고 영웅심도 아니었다. 분홍색 원피스를 본 순간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뜀박질을 멈추고 발길을 되돌렸다. 돌아서자마자 검은색 방호복 전경의 등짝을 향해 온몸을 날렸다. (-24-)

'김자 용자 태자' 내 아버지,'변자 남자 순자' 내 어머니. 정말 미안해요,이렇게 살아서. 두 분을 이렇게 까마득히 잊고 살아서. (-39-)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이나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인간이나 모두,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정적 인간에게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사라지면, 절망과 분노와 오열과 무감각이 남는다. 그들에게 삶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아니다. (-121-)

다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소수자인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 사람이 노동조합원이라든지, 다른 소수 종교라든지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럴 때 자기가 다수라고 생각하면서 소수자 차별에 눈감으면 ,자신들이 소수자로 박해받을 때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165-)

첫 번째는 돈에 완전히 눈이 멀어 어이없는 상시 위험상태로 배를 개조한 자들이다. 일찌감치 도망쳐서 물에 젖은 돈을 말리며서도 '그대로 있으라' 방송한 자들.불법적으로 적재량을 늘리고 화물을 느슨하게 결박하고 밸러스트탱크의 물을 뺀자들.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요구하는 기관사를 거꾸로 해고협박하면서도 사진전시관을 증축하는 자들,월급 270만원의 비정규직 선장을 고용하고 경력 1년의 초보 기관사에게 키를 잡게 한 자들.고장 난 구명정을 방치하는 자들.승객의 목숨보다 보험금을 더 걱정하는 자들.그것은 바로 '타락한 자본'이란 이름의 악마다. (-183-)

이 썩어 문드러진 체제의 핵심에 검찰이 지닌 터무니없는 수사권, 기소권 독점이 놓여 있다.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공소취소권,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자체수사력 보유, 체포구속장소 감찰권, 체포구속 피의자 석방지휘권 ,압수물 처분시 지휘권 등 언뜻 떠올려봐도 숨이 가쁘다. (-239-)

선함을 기억하면, 선함을 실천하고 싶고, 슬픔을 보면 슬픔을 실천하고 싶고, 기쁨을 보면 기쁨을 내것으로 가지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이며, 상식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후회를 경험하면, 반드시 후회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당면한 과제, 이상보다 현실을 강조하지마, 때로는 물질적 욕망을 내려 놓고, 정신적 욕구를 추구하려 한다. 인간이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이면서,이타적인 면을 내려놓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살아가면서,놓치고 있었던 삶의 원칙들,그 원칙들 속에 내 삶의 바로미터가 잠재되어 있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586 세대가 다연한 삶의 과제를 들여다 본다면,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다.산문이란 그런 것이며,타인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을 이해하고, 산문을 통해 내 삶의 과거를 반추해 볼 수 있다.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는 1980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정의도 아닌 것이, 자유도 아닌 것이, 민주도 아닌 것이, 스스로 몸을 공권력에 맡기게 된다. 그리고 철저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인생의 트라우마가, 빨간 줄이 한순간에 그어진다는 말은 여기에 있었다. 철저하게 밟히고,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그 순간 아기가 되어버린 ,자신의 트라우마를 내려놓지 못하고 말았다. 세월호, 촛불 집회,유시민,노무현, 그리고 우리가 놓쳐버린 우리 이야기들을 반듯하게 올려 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저자가 꿈꾸는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기대치 발밑에 있지만, 그로 인해서 상처받은 만큼,아파하는 만큼, 우리가 겪은 트라우마, 절대적인 상처의 깊이, 그 양과 질이 우리의 세상을 바꿔 놓는 척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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