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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통하는 매운맛 조선사 - 33가지 질문으로 파헤쳐본 조선의 빛과 그늘
김용남 지음 / 바틀비 / 2022년 3월
평점 :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역사가의 일이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코젤렉은 우리가 당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 있는 '현재상태'의 기원을 밝히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늬 형태로 자리잡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17-)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정몽주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은 사건을 기회로 여겨 정도전 등 급진 세력을 대거 탄핵합니다. 급진 세력은 허수아비로 생각했던 공양왕이 정몽주와 함께 자신들을 공격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일을 빨리 도모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39-)
감불 甘佛 은 까불이, 검동 儉同 은 검둥이의 한자표기로 생각되는데요 실록에 딱 한 번 나오는 김감불과 김검동은 인류 역사를 엄청나게 바꿉니다. 이들은 은광석에서 획기적으로 은을 대량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연산군은 기술을 시험해보고 사용을 지시하지요. 그런데 중종이 즉위하면서 연산군 때의 과다한 사치 풍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은 생산을 중단합니다. (-104-)
다섯번째는 무책임한 자세입니다. 선조는 전쟁 중에 15차례나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역대 조선왕은 종종 물러나겠다는 쇼를 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왕권 강화를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가끔 해야지 선조처럼 15번이면 너무 심했지요. 신하들과 세자는 번한 쇼에 매번 시달리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133-)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귀양 보내서 죽게 만들고, 계모인 소성대비를 유폐시키지요. 권력은 비정한 것이지만, 조선에서는 경쟁자를 보살펴준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태종은 2차 왕자의 난 때 친형인 이방간을 죽이지 않았고, 왕위에 오른 후 전임자 정종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세종은 인격 파탄이 심각했던 친형 양녕대군을 따뜻이 감쌌고 , 성종도 왕위 계승 후보였던 월산군과 제안대군을 우애로 대했습니다. (-141-)
막스 베버 Max Weber 에 다르면 정치인의 윤리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가 있습니다. 당시 서인 정권은 신념 윤리만 있을 뿐 책임 윤리가 부재했습니다. 그 와중에 인조와 서인 정권에게 더 충격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1644년에 이자성의 농민군에게 명나라가 멸망한 것이죠. 이자성은 베이징에 입성해 황제 즉위를 선포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밀려오자 쫒겨납니다. 결국 청나라가 중국을 장악하는데, 청나라 멸마의 원인과 결과를 예기해보도록 하죠. (-159-)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27대 임금부터 지금껏 왕의 기록이 현존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사고를 세곳이나 보관하였기에,전란 와중에 지급껏 현존할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와 나라의 근간을 완성하였던 정도전, 1392년 조선건국은 시작되었고, 1910년 8월 2일 조선은 사라지게 된다.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서,왕권강화를 꾀하였으며, 왕이 추구하는 것에 따라서,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 이 와중에 단종과 광해군, 연산군을 살펴보게 된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두번의 전란이 있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걸어갈 뻔했다.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북으로 올라갔으며, 광해군은 전란을 수습하는데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패륜의 아이콘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업적에 대해서, 호불호가 나뉘었던 원인은 ,조선이 유교 나라였기 때문이다. 즉 사후 '~군'으로 격하되었던 이유에 대해서,이 책에서 정확하게 적시되고 있으며, 역사 속 광해군과 영화 속 광해군은 너무 차이가 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소현세자 이야기는 안타까웠다 .연산군에 버금가는 최악의 군주 인조,그리고 소현세자의 비극을 보면, 조선의 역사가 극과 극을 달려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조와 정조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함께 묶여 역사속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었다.특히 영조는 경종의 독살과 엮이고 있으며, 조선은 시신을 건드리는 것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에,경종의 독살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아직은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조선이 망국의 길을 걸었던 건 외부의 힘에,내부의 분열이 있었다. 고종과 순종, 그리고 망국의 순간에도 자신만 살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으며, 백성이 죽던 말던, 왕으로서, 왕비과 공주는 비극이 아닌 일제의 비호 아래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