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신고한다고!
밀리는 무력하고 무고한 할머니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최대한 진정성 있어 보이게 '어이쿠 이런' 하는 웃음을 띤다. 하지만 밀리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몸이 여전히 명석한 머리를 따라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모든 노인네들의 서글픈 사연이다. (-13-)
밀리가 저지른 환장의 좀도둑질 수 , 굴욕적인 체포와 신문실에서 겪은 끔찍한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제시카가 얼마나 재미있어할지 상상해보라! 경찰차 뒷자석에 앉아서 몸을 낮게 웅크리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46-)
실비아 페닝은 커다란 눈과 거의 비현실적일 정도로 완벽하고 하얀 피부 그리고 말 같은 커다란 치아에 야한 반투명 산호색으로 입술을 칠한 젊은 여자다.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실비아의 어조는 마치 노래처럼 들린다. 말리에게 손을 내밀어 정식으로 악수를 청하자 팔길이 절반을 뒤덮은 금팔찌들이 댕그랑거리며 서로 부딪친다. (-81-)
그레이스는 케빈의 첫 독자이자 유일한 독자였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부서에서 혜성처럼 승진하는 그레이스를 케빈이 뒷받침했듯, 그레이스 역시 케빈을 말도 안 될 정도로 든든하게 지지해주었다. (-119-)
케빈은 몸의 물기를 닦으며 관 모양의 매끈한 호텔 욕조를 뜯어보고 거기 들어가 있는 로즈 버드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거기 로즈가 있다, 열대풍 무늬가 그려진 비키니를 입고 비누거품 속으로 멱을 감고 있다. 양쪽 가슴은 섬의 소라고둥으로 부끄러운 듯 가린 채, 왜 하필이면 열대풍이지? 알 턱이 있나. 그냥 원래 그런 식이다. 부부가 함께 배꼽을 잡게 만드는 그레이스의 성적 판타지에 예외없이 모직 모자를 쓰고 시골 억양을 가진 거대한 호텔 포터가 등장하듯, 원래 그런 식이다. (-168-)
실비아에게 수표를 건네준, 아니 건네줬다기보다는 억지로 떠넘긴 순간을 몇 번이고 그려보며 그 순간의 기쁨을 다시 만끽한다. 실비아의 안도와 감사에 전염좼는지 밀리 자신도 눈물이 날 뻔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꿍쳐 두었던 비상금 3만 파운드, 알고 보니 실비아가 밀리의 만일의 사태였다. 미국인은 몇 번이고 거듭 상했지만, 덕분에 실비아와 션이 그걸 받을 자격이 있다는 밀리의 확신은 더욱 굳어지기만 했다. 그건 옳은 일이었다. 결국 실비아는 공짜로는 절대로 받을 수 없으며 빌려주는 거면 받겠다 했다. (-201-)
소설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의 주인공은 83세 된 밀리고카티 부인이다. 밀리 고카티 부인에게는 아들 케빈이 있으며, 손녀 에이딘이 있는 밀리 고카티 부인은 사고 뭉치에 자신이 저지는 실수를 아들이 수습하는 ,말그대로 민폐할머니였다. 하지만 고카티 부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누우치기는 커녕 항상 당당하다.당당함과 뻔뻔함으로 무장한 고카티 부인의 모습 저 너머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본다면, 톡톡 튀는 고카티 부인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 하였던가. 케빈은 고카티 부인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가정부 실비아를 불러 들이게 되는데 패션 모델 뺨치는 외모에 하얀 치아, 그것이 여러가지 돌발변수가 되었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항상 문제가 되었고,그 문제가 여러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케빈이 불러들인 가정부 실비아는 밀리 고카티 부인보다 더 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케빈의 돈을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고카티 집안이 우리가 말하는 콩가루 집안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들 속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 답게,유쾌하고, 재미있게 소설을 펼쳐 나가고 있었다. 결코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상황에 다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 모습들을 보면,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주인공의 모습에 요절복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