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우수영에서 강원도 수류산방까지 마음기행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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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 삶은 국수를 불일암 우물가로 가져가 찬물에 식히는 순간, 꼬들꼬들해진 국수 몇 가닥이 우물 밖으로 넘쳐흐르는 물에 떨어졌다. 스님께서는 망설이지 않고 '신도가 수행 잘하라고 보내준 정재 淨財인데' 라며 주워 드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18-)

"전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마라.전기가 들어가면 곁들어 따라 들어가는 가전제품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화도 필요 없어야 한다. 편리함을 따르면 사람이 약아빠진다.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것이 곧 도 닦는 일임을 알아라.

수도를 끌어들이지 마라.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가고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차 이외에는 마실 것을 두지 마라. 찻잔은 세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

전기, 전화,수도를 서전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당부를 왜 하셨을까. (-69-)

'세속에 미련을 두고 그런 걸 보면 출가가 안 되느니라. 당장 태워버려라.'

법정은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태워버렸다.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이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예전에 책으로 인해 엎치락뒤치락 했던 번뇌마저 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47-)

스님이 안 계신 탓인지 길상사 산문이 낯설어 보이다. 산문 지붕에는 눈이 무겁게 앉혀 있다. 도심 사찰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산중의 절처럼 인적이 곧 끊어질 듯 하다.쌓인 눈의 두께가 침묵의 부피 같은 느낌이다.나뭇가지에 얹힌 눈들을 설화 雪花 라고 부르던가. 저 빙점의 눈꽃을 침묵의 꽃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219-)

법정스님의 삶은 청빈한 삶이었다. 죽음에 대해서 초연하였고, 물질적인 집착과 삶에 대한 번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전기 , 수도,전화 없이 살아온 자신의 안온적인 삶의 원칙을 준수하였으며, 꼭 필요한나 가재도구 이외엔 모두다 번뇌의 근원, 유혹의 근원으로 보았다. 소중한 것은 깊이 소중히 여겼고, 감사한 삶은 몸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추구해왔던 삶의 원칙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

그의 삶은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삶이기도 하다. 느린 삶, 불편한 삶, 비움을 위한 삶, 서울 성북구에 길상사를 창건하였지만, 그는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다. 산속 깊은 암자에서 자신만의 독거생활을 간직하였으며, 편안한 삶,소유하는 삶을 경계하였다. 그 누구와도 벗하며 살아갔으며, 그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건,그가 추구해 왔던 '무소유' 의 삶에 있었다. 쉽게 친구하여 벗하지 않으며, 한 번 벗하게 되면, 그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가 기본으로 돌아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가 남겨놓은 서른 여권의 책은 그렇게 불태워지게 된다. 자신이 남긴 흔적조차도 세속에 기억되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현존하는 삶에 충실한 삶을 가지고 있었다. 오로지 버리고, 떠나고,나누는 삶,전기 없이 살아가며, 그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오롯히 세울 수 있었던 건,그가 한평생 무소유라는 화두를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입적 12주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우리에게 그가 남겨은 씨앗은 단 하나이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는 것,그 준비된 삶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고,타인의 삶을 긍정하며,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걸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삶이 결국 우리에게 따스한 발자취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사람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미혹되지 않는 삶,그러한 삶이 자연과 벗하면서, 산에서,소소한 암자에서, 무소유의 삶,무위의 삶을 놓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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