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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뿌리 - 조선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현대 한국군의 기원을 찾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22년 3월
평점 :
조선은 과거제도를 무관(간부) 을 선발했다. 1800년 정조가 사망하고 몇몇 세도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인재선발과 등용과정이 문란해졌고, 고종 때는 이름만 쓰면 벼슬을 주는 '공명첩'이 거래되는 등 관료체제가 망가졌다.지방군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속오군 + 잡색군 체제' 로 바뀌어 양민,상민, 천민(노비) 등이 동시에 복무했다. (-31-)
현재 한국 사회는 임오군란을 '군인 월급차별' 또는 '신식 군대와의 차별 대우'에서 비롯됐고 그 책임을 군인 탓으로 돌리는 겨우가 많다. 사건을 부르는 명칭 '군인반란' 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정작 부정부패로 구가의 국방을 망치고 ,외세를 끌아들여 권력다툼하던 지도층은 피해자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44-)
반면 조선은 개화파를 지원한 일본에 책임을 묻고 대역죄인 김옥균을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1885년 1월 9일, 한성조약이 체결됐다. (-46-)
1894년은 조선왕조 500년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무능한 국정으로 정부 조직 경제는 무너져 있었다. 2월, 전라도 고부군에서 전봉준(全琫準, 1855~1895) 등 동학 농민균이 봉기했다. 농민들은 관리들의 폭정, 착치, 부정부패에 오래도록 시달렸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무기를 들었다. 동학군은 순삭간애 전라도 전역울 뒤덮고 5월 31일 전주성을 점령햤다. (-54-)
한편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이틀 뒤인 7월 25일 충청 아산만에 머물던 청나라 함선을 기습 공격햤다.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는 무력도발이었다. 뒤이어 8월 1일엔 '조선 독립과 내정개혁을 방해하는 청나라를 조선에서 쫒아낸다' 는 내용을 담아 청나라 선전포고했다. 청나라는 '속국 조선을 보호한다' 며 전쟁에 돌립랬고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민비 정권이 동학군을 진입하려고 청나라에 기댄 결과 한반도에서 국제전쟁이 터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조선군은 무엇을 했을까? 한 번 알아보자. (-59-)
러시아와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각자의 국익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일본이 현대에 와서도 주된 안보위협을 러시아로 여길만큼 오래된 대립이다. 대한제국은 러시아 방식을 따라 구대를 만들고 무관학교도 세워 간부를 양성했다. (-95-)
결과적으로 '독립군'은 매우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이념과 가치관, 자본과 이해관계, 활동 지역과 시기 등을 기준으로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독립군'이란 하나의 관념으로 퉁쳐서 정의된다. (-132-)
독립굱 부대는 각 지역 조선인 사회를 기반으로 꾸렸지만 일제다 모두 무너뜨렸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국민대표회의'를 두고 설전을 벌이던 때의 일이다.독립군은 소련과 만주 국경 지역으로 이동하고, 약 10개 부대를 '대한독립군단'으로 통합했다. 2개 여단 약 3,500명 규모였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주의 계열로 종교와 사상이 달라도 비교적 잘 단합했다. (-147-)
1907년 8우러 탕쟈오 군벌이 쿤밍에 세웠다. 보병, 기병, 포병, 공병 등 4개 병과로 나뉘어 9개 기수 약 5,000며이 종ㄹ업했다. 임시정부에서 쓴 추천사가 있어야 입학할 수 있었다. 탕쟈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신규식(임시정부 국무총리)이 기여했다. (-163-)
이 책은 한국군의 뿌리에 대해서 차곡차곡 설명하고 있었다.그 뿌리르 보면, 조선시대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즉 한국군, 군대의 목적은 여기에 있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는다. 문제는 임오군란 이후다. 조선이 풍전등화에 놓여질 때,국제사회를 이해하지 못했던 조선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가게 되었다. 정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고,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의 소지를 발생하게 된다. 즉 고종 임금 때 임오군란이 발생하였고, 민씨가족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외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었으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간직하게 되었다. 동학 농민운동에서, 녹두 장군 전봉준의 모습은 군대가 아니었다. 일본의 신식군대가 보여준, 그 모습들, 조총을 들고,조선 땅을 유린했던 과정 속에 우리가 추구해 왔던 군대의 형태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군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군인이 양성되었으며, 독립군을 한국군의 부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하지만 이 책을 본다면, 한국군의 뿌리는 고종임금때 발생한 아관파천, 풍전등화에 놓여진 민씨집안은 자신들을 지키위 위한 별도의 군대를 만들었다.하지만 친러파였던 고종임금과 민씨집안은 민비의 부패와 죽음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이 보여준 여러가지 상황들이 신식 군대와 그 군대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