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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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성천'이라는 이름의 강을 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대는 강변을 놀이터 삼아 유유자적 했고, 촌 동네의 생활을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해하는 동안 준비 없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스무 살,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대학교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다. 떠밀리듯, 설렘 가득한 의지를 발현해 보무당당하게 도시로 향했지만, 때가 되면 돌아오는 고작 한 마리의 철새가 되었을 따름이다. (-4-)


소도시의 이름을 딴 여자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그 시절 중간, 기말시험이 끝나면 '문화의 날' 일환으로 시내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극장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단체영화 관람을 하곤 했다.단발머리 여고생이렀던 열일곱 살이 봄, 그 영화관에서  맨 처음으로 본 영화는 <타이타닉> 이었다. (-58-)


거까이 본 그녀의 짐 더미 속에는 다양한 물건이 꽉꽉 쟁여져 있었다. 팬티, 스타킹, 양말, 노점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구나. 햇볕에 한껏 그을린 얼굴이 유독 새까맸다. 그렇지만 푹 덮어쓴 모자 아래 눈빛만큼은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기에 단단해 보였다. 버스 안에서도 여자는 제 집을 보살피느라 민폐였다. 
사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겨우 서 있던 내 자리마저 기어이 빼앗은 후, 푹 눌러쓴 모자의 챙을 끌어당겨 묵묵히 자신의 짐 가방을 챙기는 여자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135-)


"아이고 ,나무가 늙어서 기두이 집 쪽으로 기울어진지 오래라. 굵다란 가지가 지붕을 덮칠까 봐 늘 노심초사라. 아무튼 아바랑 나는 나무를 베기로 결정했대이."
6년 전, 우리 집은 이십 년 가까이 운영해 온 포도 과수원을 정리했다. (-187-)


작가 류예지의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는 나의 삶에서,나의 소중한 가치들,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상기하게 해 준다. 살아가고, 돌아보고, 내 삶을 들여다 보면서, 소중한 가치 하나하나 담아볼 수 있다. 


자가 류예지님의 기억 속 고향을 상기시키는 장소,  '내성천'은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면서, 엄마의 품이 되는, 정신적 태반의 가치를 지닌다. 작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작가 류예지의 고향을 먼저 물어볼 것이다. 내성천의 발원지는 봉화이지만, 저자의 삶의 터전은 경상북도 영주에 가까웠다. 포도밭 딸, 시골 촌동네에 살아가면서, 시골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서 잘핬던 고등학교,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그 영화관 간판은 페인트로 칠해진 간판이다. 소소한 이야기, 그 삶속에서,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던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추억이 내 삶의 정서를 지탱하는 중요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그것이 내 삶의 발원지 내성천이 되고 있었다. 시골 동네, '시내'라는 표현은 작가의 삶과 나의 삶이 엮이고 있다. 즉 시골에서, 시내는 자신에서 성장의 터전이며, 배음의 터전이며, 시간의 터전을 의미한다. 5일장, 장터에서 마주하였던 노점상 아지매, 그 노점을 보면서, 자신이 어디에서 자라왔는지,잊지 못할 것이다. 나의 작은 날들에게,어떤 날에 있었던 그 경험들이 이름 그 자체가 될 때가 있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서 느꼈던 성에 대한 깨어 있음, 배두나 , 김래원 주연의 청춘은 청춘의 일그러진 타락과 연결되고 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 나에게 남아 있다는 건, 그 시간이 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되고 있어서다. 즉 저자의 삶에서,나의 삶이 관찰되었고,그 관찰되어진 경험은 서로에게 공감과 이해였다.나의 소중함이, 작가 류예지님의 소중함이 엮인다면, 그것이 나의 삶을 지탱하는 무너지지 않는 지지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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