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시한부
김단한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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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1936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당시 무역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셨기 때문에 안나는 태어난 곳인 일본 고베에서 줄곧 자랐다. 안나는 따로 일본식 이름이 없었다. 다른 가족은 모두 일본식 이름을 가졌지만, 안나는 특별했다. (-20-)


휠체어에 타고 싶지 않은 안나의 마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으리라. 조금이라도 더 걸을 수 있을 대 걷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나가 휠체어에 탐으로 인해서 본인을 '짐'이라 생각하는 것이 마땅치 않게 느껴졌다. (-71-)


내 말에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원래 그런 뜻으로 쓰이는 거 아니냐고, 착하다는 것은 답답한 것,배려가 너무 많은 것,그러면서 자기 속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는 것을 뜻하기도 하니 착하다는 말이 바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잠시 뒤 안나는 말을 바꿨다. (-129-)


이모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이제 슬플 일만 남았다. 그치? 많은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어떤 것에 관한 두려움이 살짝 묻은 말이기도 했다. 앞으로 보아야 하는 수많은 죽음에 관련된 말이었다. 언젠가 서로의 죽음을 보게 될 날도 오겠지. 나는 이모가 나의 죽음을 본다든가, 내가 이모의 죽음을 보는 것까지는 아직 생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렇네 하고 말았다. (-207-)


안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항상 눈물이 그럴그렁 맺혀 있는 나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눈을 잠시 마주쳐도 그랬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는 다른 것으로 나의 눈물을 알아차리곤 했다.떨리는 목소리로, 숨소리로, 축축한 분위기로, 그러니 나는 더더욱 눈물을 참는 법을 제대로 연마해야 했다. (-264-)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인간의 삶은 얹네나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된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보편적인 진리에서 인간의 삶은 벗어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삶에 대해 긍정하고, 삶에 대해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우리는 순진하게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 김단한과 외할머니 안나의 삶,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은 사랑, 그리움, 만남이었다. 누군가의 삶을 긍정하고, 삶의 끝자락에서, 죽음을 긍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우리의 일상, 그 일상 속에서 어떻게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할 타이밍이다. 이 책에는 착함에 대해서 긍정하고 있다. 착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건 오로지 착함에 숨어 있었다. 착함이 긍정이 되고, 삶 속에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죽음 앞에서 결코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것,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이며, 사람됨으로서 느껴야 하는 그 무언가이다. 평생 나를 위해 살아가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 안나는 소녀 단한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 있었으며, 단한은 그걸 알기에 남은 짧은 시간을 외할머니 안나를 통해 삶에 대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오로지 단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안나를 기록하고 있다.


죽음은 말하고 있었다. 걱정과 근심, 두려움, 열등감과 괴로움에 대해서, 죽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삶의 가벼움이다. 무언가 선택하고, 결정할 때,그 결정에 대한 망설여짐이 내 안에 있다면, 그 순간 수면 위로 떠올려야 할 것은 죽음이라는 기억에 있다. 그리고 안나는 단한에게 자신의 추억을 들려 주면서, 혼자 넘겨진 단한이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와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한다. 살아가고,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 시한부 인생에 대한 무게를 덜어낸다면, 얼마든지 삶에 대해서 사랑하고, 기억하며, 내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고, 슬플일만 남았다는 건, 슬픔이 나에게 찾아오면, 그 슬픔을 내 가슴 속에, 채우는 것 뿐이다.그것이 날르 사랑하고, 나의 가족과 추억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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