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 룸에서의 마지막 밤 - 리버 피닉스, 그리고 그의 시대 할리우드
개빈 에드워즈 지음, 신윤진 옮김 / 호밀밭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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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1974년 10월 28일 리버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는 남동생에게 호아킨 라파엘 joaquin Rafael 이라는 스페인어 이름을 붙였다,. (-41-)


보텀 가족은 식탁 예절이나 대화할 대 순서를 지키는 데는 까다롭지 않았지만 존은 가족이 지켠야 할 한가지 규칙을 정했다."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이어야 하다.어릴수록 주변에서 그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까!" (-63-)


1988년에는 리버가 출연한 영화 세 편이 개봉되었다. 『지미 리어든의 인생의 하룻밤」 에 이어 『케이지비의 아들』 과 『허공에의 질주』 가 연달아 개봉되었다. 세 영화 가운데 흥행한 영화는 한 편도 없었지만 『허공에의 질주』  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171-)


1991년 새해 벽두부터 조니뎁은 가위손의 성공에 흠뻑 취해 있었다. 가위손은 뎁이 팀 버튼과 함께 작업한 첫 영화였던 것은 물론 위노나 라이더와 함께 찍은 첫 영화이기도 했다. 버튼은 애정을 듬뿍 담아 그 커플을 "트레이시와 햅번의 사악한 버전"이라고 불렀다. (-225-)


나일스의 말에 따르면 리버는 자신의 마약 사용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며 살고 있었다. 나일스의 경험상 리버의 작은 동공만 봐도 헤로인을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읫힘스러웠다."마리화나를 피우면 동공이 오히려 커지거든요." 나일스는 말했다. (-278-)


리버피닉스는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세상을 떠났다.리버피닉스의 요절, 숨어있는 죽음의 사인은 마약 약물중독이었고, 리버 피닉스는 주어진 삶을 본인이 생각학던 그대로의 노마드한 삶,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의 동생으로 네살 터울 호아킨 피닉스가 있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스탠 바이미, 아이다호거 있다. 영화 아이다호가 한국에 상륙하였을 때, 리버 피닉스와 가까이 했던 조니뎁의 영화 가위손의 성공이 있었으며, 리버 피닉스의 영화배우로서의 업적과 음악에 대한 이해을 인전하게 된다.


1970년에 태어난 그가 히피로서 살아온 불안정한 삶이 그를 궁지로 내몰았고,클럽에서 살아온 그 삶, 한국에서 물뽕이라 불렀던, 감마 하드록시부티르산에 심취하면서, 리버 피닉스는 엑스터시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음악의 감수성, 괴상한 노래를 부르지만, 평소에는 온화한 사람으로 인식하였던 리버 피닉스의 삶, 코카인, 엑스터시, 마리화나를 쉽게 구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헐리우드 환경이 그의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다으며, 1993년에 발간한 『사이버펑크』 를 발매하면서, 리버 피닉스의 삶을 오마주하게 된다.


지난 날, 우리는 수많은 아이돌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어떤 아이돌는 예기치 않은 성공에 취해, 스스로 삶을 망가뜨리게 된다. 나홀로 집에 성공에 심취하면서, 마약에 취했던 맥컬리 컬킨이,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고, 희망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리버피닉스를 그리워하고,그가 보여준 영화가 전부였던 그의 삶, 헐리우드라는 공간에서 성공과 죽음, 영광과 절망 속에서, 리버 피닉스는 서서히 삶이 저물어 가게 된다. 하지만,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예술은 우리 삶에 깃들었고, 노래 작곡에 심취하였고,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어필 할 수 있게 된다. 1990년대 헐리우드 영화배우의 아이콘이었던 리버 피닉스가 선셋대로 8852 번지였던 그곳, 조니뎁의 영화적 영감을 제공하였던 클럽, 바이퍼 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리버 피닉스를 영원한 20대 영화배우로 남길 수 있었으며, 할라우드 유명 영화배우들,  리버 피닉스가 이 공간에 모일 수 있었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의 가장 가까운 시간에 , 리버의 기타리스트 친구가 주었던 약물은 리버의 생을 정리하였으며, 리버는 시다스 시다스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었고, 피닉스 다섯 남매는 ,리버 피닉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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