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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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몸속에서 암이 발견되고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7년여. 그동안 그느 오로지 화가라는 그 색 하나만을 뿜어내며 남은 삶을 버텨왔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13-)


샘의 최후를 몇 바치 앞에 두고 있는 아비는
목련 앞에 무거워진 간을 내려놓고는 긴 묵상에 잠들어 있고
이제야 좀 살아봄 직한 나는
벚꽃의 도래를 동동거리며 보채고만 있다. (-40-)


아무 관심도 없이 준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날이 다가옴을 보며 각자가 자기 믿음만큼 준비할 때입니다. (-67-)


낡아지던 태양의 시간을
여원의 빛으로 바꿔버린
근원의 비밀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 지식에 넘치는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누가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82-)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아버지의 붓끝에 묻어난 조급함이 보이는 것만 같기도 했다. 신의 축복이 천사의 발현을 통한 예언이 아니라 이제는 실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야 할 것 아니냐는 신을 향한 항의도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94-)


그림의 출발은 본능적으로 존재의 원초성을 추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제주를 두른 돌무더기와 억새 바람, 해녀의 숨비소리, 땀이 밴 갈증이 노래와 토박이 남녀의 사랑, 증산간에 뛰어노는 망아지와 진한 안개를 술을 담그는 것처럼 내 의식 안에 담아 밀봉시켜 둡니다.(-111-)


철부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양극성 정동장애가 조금씩 극복이 되고,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일상이 되고, 몇 버의 전시회를 열고...그렇게 삶에 새로운 희망들이 하나둘 생겨날 때쯤부터였을까. 미술관을 만들 것,이스라엘 여행을 갈 것,이스라엘에서 전시회를 열것,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그릴 것, 아버지는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듯,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품고 계획하고 있었다. (-156-)


어떤 순간에 우연히 삶의 진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면의 초상화와 같은 닳고 낡아진 '고흐의 구두' 그림을 보는 순간과 같을 때입니다. 

작은 화면 속에서 텅빈 공허와 같은 고흐의 삶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 더욱 화려해지고 대중을 압도하는 파워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169-)


아들 박현진은 아버지 박유승의 예술적 세계관을 담아내고자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아버지의 발가벗겨진 채, 누군가의 손을 기다려야 하는 원초적인 그 모습을 바라보았던 것, 암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끝까지 붓을 놓치 않았다. 무엇이 그의 붓을 놓지 못하게 하는 근원이었으며, 그를 어려워하였던 아들의 내면 속 불편함은 아버지의 삶의 인생 스토리를 마주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된다. 천애 고아로 살아오면서, 느껴진 해갈되지 못한 그 무언가가 예술이 되었고 그림이 되었다. 


아버지 박유승은 1947년생이었다. 1년 뒤 4.3 사걵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박유승의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버린 채, 젖동냥으로 , 천생고아로 살아가야 헀다.그러한 아버지는 꼴통 보수였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협회에 들어가게 된다. 글을 사랑하였지만, 글을 접었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하게 된다. 아들 박현진은 화가가 아닌 글쟁이로 살아가며, 아버지의 세계를 탐구하게 된다. 간경화로 암으로 인해 고통과 슬픔,결핍을 자신의 붓 끝에 녹여내고 있었으며,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근원적인 삶의 부분들을 훑어내려 가고 있었다.


화해와 용서, 친숙함,이 두가지를 저자는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면서, 수집하면서 얻고자 하였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기쁨의 환희를 느꼈을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친구를 통해서 들게 된다. 살아서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죽어서야 아버지의 삶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지혜란, 현자란 그것을 빨리 깨우치고,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어쩌면 자신의 후회를 글의 원초적인 글감으로 삼아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어색한 관계,불편한 관계,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놓침과 동시에 후회가 되고 있었다. 죽음이 모여드는 곳, 그곳에서 발거벗겨진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은 스스로 삶을 고찰하고,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연결하고자 하였다. 살아가되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 견뎌야 할 때와 이해해야 하는 그 순간, 끝까지 예술을 놓치지 않으랴 했던 아버지의 삶은 철저하기 초월한 이기주의자로서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렇나 삶이 누군가에게 큰 흔적을 남길 수 있으며, 그 삶속에 얻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장례식에서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인가 숙제를 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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