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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의 세계사 -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조약 64
함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원전 13세기,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이룬 그리스와 로마는 아직 자취가 없고 동양에서도 고조선과 은나라 정도만 볼 수 있던 시절에, 지금의 시리아와 동양에서도 고조선과 은나라 정도만 볼 수 있던 시절에, 지금의 시리아와 터키 국경 인근의 카데시라는 마을 근처에서 오리엔트 세계의 패권을 놓고 두 강대국이 격돌했다. 두 세력은 되풀이되다가 전투가 벌어진 지 16년 만에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로 볼 때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21-)
전연의 맹약을 맺기 11년 전에도 요나라는 중요한 협정을 체결했는데, 바로 고려와 요, 서희와 소손녕의 '봉산 협정' 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질서 변화의 한 계기로 작용하면서 전연의 맹약으로 이어진다. (-75-)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의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 미국이 서쪽으로 쭉쭉 뻗어나가 태평양에 이르고, 북아메리카의 중심 세력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루이지애나 매입이 없었다면 미국은 아메리카 유일의 강대국이 되지 못했고, 아메리카는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유럽 열강의 싸움터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서 국력을 기를 여유가 없었다면 , 20세기 들어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기회 또한 얻지 못했을 것이다. (-137-)
강화도조약은 같은 해 8월 타결된 '조일수호조규부록' 과 '조일무역규칙'으로 보완되었으며, 여기서도 일본 대표들은 자신들이 뭘 다루고 있는지도차 모르는 조선 대표를 농ㄹ팍하며 막대한 이권을 따냈다. 가령 '부록' 제7관에서 일본 화폐가 조선에서 통용되도록 했는데, 금속으로 만든 조선화폐가 종이로 찍어낸 일본 화폐와 교환함으로써 국부가 급속히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규칙' 제6칙은 조선의 미곡이 일본으로 수출되는 근거를 마련해주었으며, 이로써 일본은 조선의 식량 사정을 통제할 뿐 아니라 쿨가마저 마음대로 주무르게 되었다. (-194-)
안주스(ANZUS).비교적 생소한 단어다.내용을 봐도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A)-뉴질랜드(NZ)-미국(US)이 1951년에 맺은 안보 동맹 조약이기 대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가 역사적으로 중대한 전쟁의 주역이었던 적도 없고,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먼 곳의 별 상관없는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이는 서방에서 나토를 결성한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맺은 유일한 집단 안보 동맹이며, 반세기 이상이 흐르면서 이 세나라는 '혈맹'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만큼 굳게 결속했다. (-272-)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처리]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 주민 대표가 다음 3단계가 추진되도록 합의를 진행한다. 첫째, 5년이하의 기한을 두고 이스라엘 군정이 거주 주민이 선출한 자치 기구에 행정권을 이양한다. 둘째,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이 자치 기구의 권한을 승인하고 이스라엘은 점령군을 철수시킨다. 셋째, 자치 기구가 출범하고 5년 이내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유엔안보리 결의안 242호에 의거한 해당지구의 분쟁해결을 달성한다. (-345-)
반면에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국의 각성을 촉구하며 교토의정서 체제를 옹호했는데, 미국 입장에서 그것은 유럽이 지구환경에 대한 의식이 투철해서라기보다는 뱃속이 편해서였다. 가령 독일은 구동독 지역의 낙후된 산업 시설을 교체하지만 해도 의무가 달성되고,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애초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연료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감축 의무 면제 국가들도 2005년 제11차 당사국 회의에서 내려진 "교토의정서 제2기(2013년 이후)에는 개도국도 일정한 감축의무를 지도록 한다"는 결정이 부담스러워 대체에너지 개발을 충분히 한 뒤로 온실가스 감축을 미루자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442-)
1876년 고종 13년 일본과 조선 사이에 맺어진 불평등 조약 강화도 조약이 있다. 1905년 일본은 을사조약을 맺어서 대한제국을 병합하였고, 1904년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게 된다. 1895년 일본과 청나라 간에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 전후 처리를 위한 조약이기도 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은 국제법에 따르며, 국가과 국가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체결된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
국제관게에서 꼭 빠지지 않는 조약을 이해하면, 각나라의 특징과 연결,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다.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혈맹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안보를 채워주면서, 동아시아의 군사력을 견제하게 된다. 일본은 양차 세계대전 직후 근대화 과정에서 여러 조약을 조선과 청나라를 상대로 맺었으며, 그 당시 조선은 조약에 대헤 무지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남기게 된다.
정쟁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조약을 맺었고, 그들 사이에 맺어진 조약은 서로를 끈끈하게 연결하거나, 견제하게 된다. 즉 조약이 있음으로서, 서로을 견제하고, 6.25 이후 대한민국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진것도 조약에 있으며, 미국이 강대국으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조약 덕분이다. 여기에 나폴레옹은 조약으로 인해 미국에 숟가락을 떠먹여준 결과를 만들었으며, 아프리카 대륙이 자를 긋듯 경계와 영토를 나눈 것도 마찬가지다. 이후 조약은 경제적인 목적,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 자원개발을 위해 만들어지게 되엇으며, 국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여러가지 조약을 맺었고,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 식민지배를, 일본은 조선 식민지배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핵확산방지조약을 통해 핵무기를 남용하는 것에 대해 국가들 사이에 서로 견제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고, 1961년 12월 워싱턴에서 맺어진 남극조약은 남극 대륙을 이용원칙을 확립하였으며, 과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조약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페기되고, 탈퇴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사, 언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 조약을 맺었으며, 맺어진 조약에 따라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확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