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식물기
J.H.파브르 지음, 정석형 옮김 / 두레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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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실한 가지들은 정말 부지런히 일한다. 그래서 이듬해는 휴식한다. 은퇴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 해에 싹튼 가지들이 성장해서 다음 세대의 눈이 가지가 되어 그 역할을 대신할 때까지 공동작업을 한다. 나무는 이와 같이 뒤를 이어, 거듭 쌓이는 여러 세대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대는 대궁에서 마지막 잔가지까지 가지들를 차례로 셀 수 있다. 당대는 잎이 달린 잔가지로 대표된다. 식물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이 부분이다. (-31-)


또한 관찰한 3백 층 전부의 두께에서 한 층의 평균 두께를 추산할 수가 있었다. 그것을 알면 원줄기 전체의 두께와 비교해서 나무의 나이를 쉽게 추산해 낼 수 있다. 아단슨이 그것을 해 보았다. 그 초보적 계산의 결과로 몇 그루의 '바오밥'은 나이가 6천 년이라는 것을 밝혀냈던 것이다. 한 나무의 일생이 인류의 역사 전체와 같은 것이다. (-90-)


종자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걸작이다., 거기에는 씨눈이 두꺼운 베냇옷이 싸여 쉬고 있다. 그곳엔 생명이 눈뜨는 날을 맞기 위한 양식이 저축돼 있다. 습성이 그처럼 다른 두 부류의 식물이 각기 타고난 습성에 따라 자기 종자에게 특별한 성격을 주지 않을 리 없다. 양친이 현명하게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는가는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139-)


줄기를 납작하게 하고 관을 반원으로 휘게 하여 나무에 밀착시킨다. 그리고는 한 쪽 덩굴은 왼쪽으로 , 한 쪽은 오른쪽으로 돌려 마치 나무를 조이는 식으로 해서 줄기를 끌어안는다. 나무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호의를 베푼 것이다. 
진짜 선행은 그래야 하는 것이다. 이해타산만 따졌다면 곤궁에 빠진 덩굴의 간청을 거절했을 것이다. 이 나무가 어떤 곤란을 맞게 되는다는 잠시 뒤 알게 된다. 덩굴에게 악의가 있었다면 덩굴은 자신의 띠를 힘껏 조이면 된다. 마음 착한 나무는 교살되었을 것이다. 그런 혐의는 두지 말자. 여태까지 조그만 덩굴식물은 아주 조신했었으니까. 이웃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조이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197-)


그런데 배나무는 지금도 인간에게 완전히 순종하지는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옛날의 관목시대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다. 과수원의 배나무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반란계획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저 초라한 야생 배 시저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가까이서 언제나 감시하고 어떤 때는 부드럽게 어떤 때는 강압적으로 구슬리고 있으니까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69-)


양송이는 너무 부러워서 눈물까지 흘렸다. 별꽃은 별꽃대로 생울타리 속에서 중얼거렸다. 나를 그늘 속에 가둬놓는 진저리나는 이 숲 속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인가? 붉은 방울새야, 넌 정말 좋겠구나. 내 씨를 까먹고는 단숨에 언덕너머로 날아가서 그늘이든 양지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쐐기풀의 친척인 잡초는 벽이 흙먼지로 자기를 더럽힌다고 불평을 했다. (-332-)


빨갛게 달아오른 화덕에 빵조각을 올려놓는다. 빵은 연기를 내며 시커멓게 탄다. 남은 것은 숯뿐이다. 그런데 그 숯은 어디서 왔을까? 빵에서 다시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이외는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빵은 처음부터 숯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숯이 다른 물질 속에 움츠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406-)


 앙리 파브르의 <파브르 식물기>를 접하건 1992년이다. 그 때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 책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이 책은 담임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이다.  앙리 파브르는 1823년에 태어나 1915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파브르 곤충기가 있었다. 이 책은 그가 바라보았던 식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지혜가 담겨져 있다. 곤충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듯, 식물을 따스하게 바라보았을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며, 인간이 식물에게 여전히 못쓸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느낄 수 있다. 


하나를 알면 둘을 안다고 하였던가, 인간사회에서도 인간과 인간은 서로 상부상조하고, 협동과 연대를 한다. 식물도 협동과 연대를 하고 있다. 태양으로 광합성읗 하고 경쟁하기 보다 협력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식물 사회에서 배워야 할 점은 여기에 있다. 이웃하는 나무를 이용하고, 이웃하느 식물을 이용하며, 때로는 빌붙어 살아간다. 그럼에도 식물은 서로 불평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내 것을 탐하더라도 포용하려고 한다. 단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쓸 뿐이다. 장 앙리 파브르는 가지,잎 , 열매, 종자, 모종, 접붙이기, 인간이 야생식물을 길들이기 위해서, 식물을 연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식물의 진화과정을 살펴보게 된다. 삶과 엮이고, 동물과 식물은 서로 살아간다. 식물에게서 겸손함과 포용을 얻읖ㄹ 수 있다. 지구의 정화를 위해 살아가는 식물이 없다면, 인류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수많은 쓰레기를 바다와 산에 투척하고 있음에도 식물은 스스로 역할에 충실하고, 인간의 쓰레기를 흙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겸손함의 반의 반이라도 나에게 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더 지혜롭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더군다나 함께 사회를 살아가고, 나의 역할을 잊지 않는 것, 때로는 빌붙어서 살아가고,때로는 엮이면서 살아가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브르 식물기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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