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복음 강의 -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을 찾아서
오쇼 라즈니쉬 지음, 류시화 옮김 / 청아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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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단 한 사람도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목수의 아들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내면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라고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 자는 정신병자이거나 아니면 바보이다. 그것도 아니면 매우 영리한 인간이다. 도대체 어떻게 목수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가?" (-24-)


예수는 말한다."나는 마음에 결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너희에게 주리라. 신학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 시로써도 엿볼 수 없었던 것을 너희에게 주리라. 논리도 사랑도 그곳에서는 멈춰 버린다. 나는 너희에게 주리라. 사람의 마음에 결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이것은 가장 깊은 , 가장 심오한 가능성인가. (-98-)


존재를 통해 살고, 행위를 통해 살지 말라. 행위는 표면의 것이지만 존재는 내면 깊은 곳에 속한 것이다. 존재가 옳지 않다면, 무엇을 하든 옳지 못한 것이 된다. 무엇이 들어오든 자기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대 속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그대의 본질과 존재를 드러낸다. (-181-)


모든 구분과 분리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실체 속에 구분선은 없다. 세계는 하나이며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순백색이다. 그러나 마음을 통과하면 세계는 여러개로 나누어진다. 구분하는 마음의 메커니즘을 버리는 것, 그것이 병상이다. 내면의 원이 생겨날 때 그대는 다시 하나가 된다. 어린아이 같아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의 의미가 그것이다. 순수함이야말로 신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살과 죽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297-)


이 사건이 죽기 전에 일어난다면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종교적인 사람이란 모든 사람이 죽음 속에서 깨닫는 사실을 죽기 전에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종교적인 사람이란 살아있는 동안에 과거를 들여다보고, 그 속임수 전부를 보고, 자기 삶의 모든 허구성을 깨달은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이다. (-359-)


당신은 정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

천사는 절대적인 완전함, 순수성, 순진무구함의 상징이다. 이 말로 시몬 베드로에 대한 어떤 것을 알수 있다.그리고 이 시몬 베드로는 기독교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회는 끊임없이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에 휘말리게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느 죄를 창조했다. 왜냐하면 악한 것과 선한것에 너무 매달릴 때 죄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473-)


유대인들은 언제나 그들의 아돌프 히틀러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을 벌 줄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불편했다. 죄의식이 그들을 따라다녔다. 진리를 향해 돌을 던질 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고난의 20세기가 지난 후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절대로 아니다! 예수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가 존재한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505-)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미친 것이 일어난다. 마음속으로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원을 찾아간 덕이 있는가? 그것은 거짓 종교이다. 자신이 종교적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그것이 도움을 주는가? 사원도 노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의식 행위는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성직자 역시 그대의 약점을 알고 그대를 착취할 것이다. (-640-)


예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붓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헤겔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깨달은 사람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바라본다. 그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단순히 바라봄으로써 그는 길이 어디에 있고, 문이 어디에 있으며 현관이 어디에 있는지안다. 그리고 그냥 나가는 것이다.
예수가 그곳에 있을 때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그대는 장님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문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죠?" 하고 물어볼 가능성은 많다. (-782-)


하나의 전환이 일어났다. 성공은 실패하고, 실패는 방향전환을 가져온다.
그런데 왜 성공은 실패하게 되는가?그대가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부가 아니었고, 권력이 아니었으며, 안정이나 안전을 추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저택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집읓 추구하고 있었다. 영원한 휴식을 ,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대가 추구한 것은 밖에 있는 집이 아니라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평화로운 존재의 상태이다. 그대는 부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대가 추구한 것은 밖에 있는 집이 아니라,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평화로운 존재의 상태이다. 그대로 부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았고 죽음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대는 어떤 죽음고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 삶은 파괴될 것이다. 매순간 두려움이 존재한다. 화산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821-)


1945년 1월 이집트 땅에서 발견된 파피루스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도마복음'이다. 그때 당시 발견한 복음서로 <진리 복음> <도마복음> <야고보 외경> <요한 외경> <빌립복음> 등 있었다.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거의 일치하고 있는 도마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35년 뒤, 1980년 이후였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 복음, 요한 복음에 이어, 널리 날려진 외경 복음서,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져 오는 책 도마 복음이다. 


이 책을 본다면, 우리의 삶, 나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수 있으며, 순수한 종교에 따라갈 수 있다. 도마 복음에 나오는 종교적인 것은 무엇이며. 내면세계의 혁명가라 불리던 예수의 삶속의 깊은 통찰을 엿보게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종교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길을 열어주고 있다. 옳은 행위가 아닌 바른 존재가 되는 것, 옳은 행위가 결코 바르지 않은 존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도마 복음에는 나와 있었다. 현실 속에서, 이 가르침은 유효하다. 우리 주변에 바르지 않은 수많은 존재가 그걸 감추기 위해서, 매번 올바른 행위로 덮는 경우가 여전히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람에 의해서 왜곡되고, 오류를 생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뼈져리게 아픈 송곳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 예수그리스도는 실패했다. 붓다도 마찬가지로 실패하였고, 마호메트도 실패하였다.하지만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칸트와 다른 특별한 존재를 부각할 수 있었으며, 스스로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유대인이다. 그리고 그의 후손은 성지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었고, 그는 실패하였지만, 지금 우리에게 유일한 존재로 남아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고찰해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종교적 순수함에 대해서 시몬 베드로는 세상를 구별하고, 구분하였고, 집착하는 삶을 살아갔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의 삶은 이질적인 형상이 보여졌다. 같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와 섞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시몬 베드로와 유대인이 저지른 죄는, 그들의 뿌리깊은 죄읫힉은 히틀러가 유대인학살의 명붕를 만들어 주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유대인의 삶 뿐만 아니라 도처에 있다. 세상 사람들이 구분하고, 구별짓기 좋아하고, 분리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삶이 성공에 도취하지만, 삶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함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그 원죄의 근본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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