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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토닥토닥
이다. 지음 / 파라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돈을 못 벌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지질이도 못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나니까 그러는 거야, 토닥토닥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힘든 척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살아가려고 그러는 거야, 토닥토닥 (-210-)
마당에 널어둔 빨래가 흠뻑 젖고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빗물이 들이치고
뚜껑 열어놓은 장독에는 빗물이 고이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당장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런 날 있더라, 살다보면 (-53-)
울보였어요. 할머니는
살구꽃이 피어도 울고
찔레꽃이 떨어져도 울고
토닥토닥 깻단을 막내질할 때도 울고
까치밥이 떨어지고 눈이 내려도 울고
호박잎처럼 까슬까슬한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면서도 울었어요. (-77-)
사랑은 가을보다 더 깊어서
사랑은 단풍보다 더 붉어서
사랑은 꽃잎보다 더 고와서
사랑은 바람보다 더 맑아서
사랑은 향기보다 더 진해서
사랑은 이별보다 더 아파서
떠날수가 없나 보다, 저 나비는 (-91-)
주는 게 아니라
하나 둘씩 내려놓고 있는 거야
청춘도 사랑도 후회도 그리움도
미련없이 내려놓고 있는 거야
가지려 했어도 가지지 못 했고
가졌어도 결국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곧 겨울바람이 불어올 테니까. (-105-)
나무 곁에는 잡풀도 있어야 하고
햇볕도 바람도 새소리도 있어야 하지만
나무 곁에는 무엇보다 나무가 있어야 한다.
사람 곁에는 밥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 곁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쯧쯧 저 놈도 허리가 많이 급었네
할머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당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121-)
빈곳이 있어야 떠날 수 있지,가을도
빈 곳이 있어야 찾아올 수 있지, 봄도
항아리 혹은 냉장고에서
김장김치가 익어가는 딱 그 모습일 거야
소금기를 머금은 배춧잎들이 얼굴을 맞댄 채
고춧가루 무생채 새우젓 마늘 생강 쪽파 갓
찹쌀죽을 포근포근히 끌어안고
겨울을 견디는 그 모습일 거야
정이든다는 것은 (-133-)
예기치 않은 어떤 일이 내 앞에 나타날 때, 망연자실하게 되고, 그 누구의 말과 위로가 내것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삶과 죽음, 사고와 전쟁, 가난과 기근, 그리고 예고되지 않은 재난 앞에서 인간은 처연하게 자신의 나약함에 스스로 무너질 때가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필요하였던 그 무언가에 대한 깊은 따스한 울림, 나를 토닥토닥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회복될 수 있는 힘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시집 <내가 나를 토닥토닥>은 시인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셀프 위로이며, 셀프 선물이다. 내것이 아니면, 돌보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속성, 그 속성에서 위배되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즉 시인은 그러한 인간의 속성을 깊이 간파해 나가고 있었으며, 내 삶을 바로 볼 수 있고,응시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은유와 상징으로, 자연속에서 시인 특유의 관찰에서 디테일한 시상을 독자에게 드러내고 있었다.인간은 인간에게 배신과 상처를 느끼며 살아가느 나약한 존재이면서,결국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비워짐, 그리고 여백, 내 삶이 팍팍하고, 삭막한 것은 내 안에 따스함과 위로와 치유가 깃들 여지를 남겨놓지 않음을 시인은 그러함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앞에 놓여진 어떠한 불행이 나를 스스로 적극적인 비움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놓는다. 시인에게 비움이라는 적극성 안에 내포하고 있었다. 살아가되 견딜 수 있고, 봄이 내 앞에 있으며, 겨울이 다음에 온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겨울이 오면, 봄이 찾아오게 되는, 자연은 결코 사라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음을 자연이 주는 이치가 나를 스스로 토닥토닥하게 해주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서글피 우는 할머니의 모습을 시인은 그렇게 안타깝게 느끼었나 보다. 삶이 있고, 죽음이 있는 인간의 삶에서, 타인의 죽음 앞에서 덤덤하였던 자신은 나의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어른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죽음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하게 만들며, 나의 어린 모습을 하염없이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삶을 기록하며, 죽음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음을, 그 적극성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