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상사 - 헤로도토스에서 현재까지
앨런 라이언 지음, 남경태.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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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비록 아테네 민주주의를 거부했지만, 정치적 시민권과 밀접하게 연관된 '로마식' 논의를 많이 했다. 마키아벨리도 아테네 민주주의를 마뜩잖게 여겼으나 용병보다 시민군대를 선호했으며, 선대의 로마 저자들 그릭로 이후의 수많은 저자들처럼 제도만 잘 갖춰진다면 부자들이 공화정을 전복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해도 청렴한 평민들이 충분히 그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13-)


아리스토텔레스가 얼마나 옳은지 판단하기란 어렵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느 자기중심적인 존재라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기적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 이외에 달리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것이 폴로스 칼리클레스, 트리시마코스의 세계관이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어떤 것을 특별히 극대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31-)


키케로의 사상은 현세적이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내세적이다. 키케로의 공화정은 존중,감탄, 충서을 바칠 가치가 충분하고 공화정의 성공은 위대한 선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는 모든 세속의 국가들이 보기에는 모든 세속의 국가들이 폭력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사람들의 놀이터일분 이고 세속적 영광은 덧없다. (-242-)


교황의 둘째 목표는 속인의 서임권을 폐지하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속인이 서임에 관여하지 않고 대주교나 교황이 본래의 권한으로 주교를 서임하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하인리히 4세는 앞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그것을 거부했다. 교황그레고리우스가 그를 파문하자 이탈리아와 독일은 거의 내전상태에 접어들었다 원래 우세했던 그레고리우스였으므로 1077년에 하인리히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298-)


교황의 최대 약점은 로마 자체였다. 로마는 끊임없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귀족 가문들이 교황의 삼중관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 뇌물을 먹이고 ,서로 다투였다. 가에타니 가문과 코론나 가문은 교황ㅇ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꿈꾼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352-)


하지만 이 스토아적이고 회의적이며 성찰적인 관심은 직접적인 정치적 의미와 영감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영어 번역본 이외의 다른 번역본에서는 그의 수상록을 '도덕적,정치적 문헌이라고 간주한다. 몽테뉴는 1533년에 태어나 16세기 중반에 벌어진 프랑스 내전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용기,배신, 협상의 위험 등에 관한 그의 논의에는 경험의 목소리가 배어 있다. (-428-)


마키아벨리는 그가 사랑하는 공화국이 분괴한 뒤에 군주론을 썼다.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주제는 마키아벨리가 공직에 있을 때 자주 생각하던 것인데, 체사레 보르자가 도시들을 정복하고 장악하는 과정을 지켜본 결과, 그리고 프랑스가 밀라노를 정복한 귀 점령지를 지키는 데 실패한 과정을 구체화했다.이를테면 '새로운 군주' 가 어떻게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다. (-486-)


앨런 라이언의 <정치사상사> 두번째 완독하였다. 이 책은 서양 정치의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정치의 역사계보를 훑어보게 되며, 지금껏 흘러온 정치와 권력자가 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된다.국가에 대한 개념, 군주의 자질, 폴리스와 공화국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처음 수렵 채집 생활을 하였던 인간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한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야만에서 벗어나야 하며, 인간은 전쟁과 내전,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생존법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에서 권력자는 하나씩 단계적으로 정치라는 개념을 확립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초창기 정치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정치였다. 그리스 시대의 공화정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공화국은 큰 틀에서 본질은 같지만, 성격은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 소수의 공화정과 대중의 원하는 공화정은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차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근대정치의 시작에 대해서 이 책에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보고 있었다. 종교적 가치에 의해 완성된 중세의 정치에서 탈피하여, 근대로 이행되는 첫걸음을 헤겔이 아닌 홉스에 두고 있는 이유는 그가 남겨놓은 리바이어던에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에  영국 혁명이 있었으며, 사회적 격변 속에서, 종교적 가치에 다른 중세 정치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영국은 왕정에서 탈피하여 공화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절대적인 권력  ,낡은 정치에서 , 새로운 시대의 물결을 완성해 나가는 근대 정치를 꿈꾸게 되었으며, 국가라는 유기체에 대한 근거를, 리바이어던에 제시하고 있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 시대에 살았던 헤겔, 칸트,토머스 홉스 . 존 로크 . 몽테뉴 , 장자크 루소 까지 정치사상의 계보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이후 . 카를 마르크스 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남겨놓은 자본론은 현대 사회의 뿌리이며,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이념으로 고착화하였으며,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회를 완성해 나가는 정치적 원칙에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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