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전시관
설혜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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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설문'은 오프였던 어제, 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소설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다 짜낸 묘안이었다. 다행히 수샘은 미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11-)


"사나흘치 밥으로 구한 패물보다 삼년 치 밥으로 얻은 패물이 더 값지지 않겠습니까.저를 살리시고 삼년치 밥을 얻어 값진 패물을 구하시면 분명 나으리가 사모하는 분도 나으리 마음을 받아주실것입니다."
나무꾼이 도끼를 내리고 빈 지게를 걸러지니 나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42-)


인물들의 삶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나으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일이 터지는 것. 삶에 난입하는 대부분의 일은 시작과 끝을 알려주지 않고 끼어든다. 시작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59-)


"저희 도배의 원칙은 자기 일을 스스로 하자는 것입니다 사모님 .아까 이 집을 사모님 집이라고 하셨지요? 일단 카펫을 걷어주시고 티브이와 소파도 베란다로 옮겨주세요. 장식장이랑 화분도요." (-83-)


맛을 즐기기 위해 나는 좋아하는 것일수록 아껴먹는 편이었다. 엄마 말로 하면 김장을 김치찌개 만드는 데만 몽땅 써버리면 한겨울 먹을 김치가 없고 여친 말로 하면 새로 산 옷도 일주일만 매일매일 입고 다니면 다시는 보기도 싫어진다는 말과 같았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막 먹어서 우감각햊졌을 때의 서글픔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113-)


전시관 하면, 제일 먼저 기억하고, 떠오르는 건 예술과 미술,음악이다. 전시관이 문학과 엮일 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우리의 고정관념이 항상 정돈되어있고, 하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설이 허구를 가리키지만, 그 허구가 우리의 경험의 근본에서 우러나온다는 건 굳이 강조하자 읺아도 누구나 알게 된다. 이 소설이 허구의 전시관이라고 지어진 배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기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검증하여야 할 것은 여기에 있다. 허구이지만, 판타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소설이 시간과 맥락을 강조한다면, 판타지는 시간과 공간을 뒤틀어버리는 속성을 지닐 때가 있다. 물리적인 원칙을 깨트려 버리는 것이 판타지에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의 상상력의 깊이 저 너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내재되어 있다. 즉 이 허구의 전시관에는 'IF'라는 가정법에서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현실의 물리적인 법칙에서 벗어나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작가 특유의 상상력에 따라 스토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판타지 구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책 속에 소개되고 있는 '빈한승빈전'은 빈한이라는 나뭇꾼이 등장하고 있으며,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은혜는 어떤 것인지 간파할 수 있다. 단 차이라면, 그 전래동화의 스토리 전개에서 그들의 선택과 결정, 설득과정이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관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구조를 보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21세기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아닌, 26세기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개입되고 있으며, '만약(If)~이라면(else)' 가정법이 이 소설에 함축되어 있었다. 독특하고, 가벼운 판타지 단편소설 속에서 작가의 은유와 상징이 깊이 내제되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의 기발함이 도드라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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