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1
응웬 꾸앙 티에우 외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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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의 양면

나와 그대는 잎사귀의 양면 같다.
서로를 떠날까? 어디 쉽게 떠날 수 있으리.
허나 서로에게 다가가려면? 어찌 닿을 수 있으리.
나는 여기에, 그대는 아련한 저쪽이니. (-28-)


위안

이제 그만 됐어요.그대여 제발 슬퍼하지 말아요.
분명 우리는 전생에 수행이 어설펐나 봐요.
그래도 다행스럽게 우리는 여전히 친구예요.
사랑하지 않는다고 적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젊음이 우리를 더 이상 가깝게 두지 못하지만
세상의 먼지가 될 때까지
그리고 먼지도 분명 짝이 필요할 테죠
비록 찰나뿐인 순간의 짝이 될지라도. (-52-)


벙어리 폭탄

완전하게 폭발하지 않은 벙어리 폭탄

전선 저편에서
비행기들 하늘 찟고 날아와 우리 마을을 폭격했다.
나와 친척들이 숨어 있던 대피호 근처에 폭탄하나 푹 꽂혔다.
하지만 터지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폭탄에 익숙했다.
자기장 폭탄이 아니었기에 그저 파냈다.
아버지는 기폭 장치가 없는 폭탄이라 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오늘까지 살 수 있도록.

수많은 검사 단계를 거치는데
기폭 장치를 빼서 어디에 숨길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되었다. (-99-)


순수

이슬 한 방울 마시면
내가 경솔해 보이고

난초향기 맡으면
내가 죄책감 들고

시를 한 편 쓰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나와 함께 시간이 사라지면
내가 무죄라 여겨진다! (-122-)


당대 베트남 시인 20명의 시인이 쓴 한편의 서사이다. 이 시에는 그들의 삶이 녹여 내리고 있었으며, 베트남인들의 공통된 민족성과 가치관, 정체성을 읽게 된다. 그들의 역사가 안고 있는 수천년의 역사는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고유의 민족서의 씨앗이 되고 있었다. 전재으로 인해 피폐하진 그들이 지키고자 피를 흘렸던 땅, 죄책감과 절망감, 살아있는 이들이 말하지 못하는 그 치전하고 있는 무의식은 결국 그들의 삶에 많은 희노애락과 함께 할 때가 있다. 베트남 시는 베트남인의 역사이며, 그들의 삶이기도 하다. <사는 게 뭐지 오래돼어 잊었다>는 나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아간다는 것이 치유가 될 거라고는 이 시집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였고,느끼지 못한 것이다. 내 안의 침전해 있었던 아픔, 고통, 슬픔,죄책감과 절망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즉 사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아갈 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의식이 무의식이 되고,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는 순간,. 그들의 민족성 너머의 깊은 슬픔이 깊은 울림과 함께하고 있었다. 즉 이 책에서 쓰여진 시는 그들이 남겨놓은 시라는 유산 중에서 뜨거운 정수에 가까운 시를 품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던 , 베트남 전쟁이 ,베트남인들에게는 가족의 일이었고, 슬픔이었고, 아픔 그 자체였다. 미군과 연합군이 떠난 그 자리에는 그들의 슬픔과 고통이라는 인생의 깊은 흔적이 패여 있다. 삶과 죽음, 가까워 보이지만, 아주 멀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동전의 양면에 해당되는 잎사귀의 양면이라는 표현, 시적인 의미와 시상, 표현은 다르지만, 시의 맥락 속에 이해와 공감,교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그들이 품고 살아온 지난 날 들 속에 우리의 감춰진 슬픔이 현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는 그 아련한 기억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었으며, 인류 공통의 메시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그들의 민족적인 양심과 역사적 의식, 우리가 생각하는 베트남인의 강인함과 유연함이 한 편의 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으며, 20인의 시인와 그들의 남겨놓은 시 한 편 한 편이,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을 이해하고,그들이 서구인들의 강압에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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